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42) 성령 체험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7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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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선함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 그분은 누굴까?
섬세한 악기는 조금만 건드려도 울림이 일어난다고 하며 성령께 맡겨드리라고 하였다
그다음부터는 나의 성향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간혹 칭찬을 들을 때도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라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어느 모임 때였다.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각자 일을 맡았는데 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게 됐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니 모두들 피곤한 모습이었고 특히 한 사람이 아주 지쳐 보였다. 그에게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등을 떠밀 참이었는데, 마침 그 행사 책임자가 나타났다. 이러저러하다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그 책임자는 활짝 웃음 띤 얼굴로 팔을 뻗쳐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요리하는 거야!”라고 구호처럼 외쳤다. 그래서 내가 “아, 그 말은 ‘사랑하는 거야!’하고 같은 뜻이네요.”라고 응수하자 주방에 있던 이들이 모두 기뻐하며 “사랑하는 거야!”라고 마치 오페라에서 합창이라도 하듯 함성을 질렀다. 피로에 지쳤던 그도 어느새 밝은 얼굴이 되었다. 일을 일로만 하면 금방 피곤해지기 마련이지만, 같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할 때는 우리 몸 어디서 에너지가 솟는지 그리 피곤하지가 않다.

눈을 뜨니 새벽 1시, 사실 그건 꿈속의 일이었다. 방금 꾼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책상 위 메모지에 “요리하는 거야!”라고 썼다. 아침에 일어나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빙긋 웃음이 돌며 참 희한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주 기분이 좋았다. 꿈에서도 그렇게 이웃들과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였다.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했다. 우리 마음에 선한 의지를 심어 주고 좋은 생각을 갖게 하며 결국 착한 행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 어딘가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굴까?

묵주 기도를 하다가 영광의 신비 3단에 이르면 매번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령을 보내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곧 당신을 잃어버리게 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그분의 거룩하신 영, 그 영께서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생각하면 정말 든든하다.

예전에는 성령이라고 하면 아주 멀게 느꼈다. 대단한 일, 보통 사람은 체험할 수 없는 특이하고 엄청난 경험이라야 성령 체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젠가 끼아라 루빅이 “우리 모두가 환시를 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뜻으로 말한 적이 있다. 하긴 크고 화려한 꽃도 있고 아주 작은 풀꽃도 있으며, 태풍이 지나는가 하면 산들바람도 불지 않는가, 성령께서도 사람을 감동시켜 쓰러뜨릴 만큼 격렬하게 나타나기도 하시지만 잔잔한 일상에서 슬쩍 스치기도 하실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거룩하신 영이 지금도 존재하심은 분명하고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겠다.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고 미사 때마다 인사하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들 서로 간에 그분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뜻일 것이다.

작은 감동에도 눈물이 돌곤 하는 내 모습이 민망스러워 한번은 어떤 분께 왜 그런지 여쭌 적이 있다. 그분은, 섬세한 악기는 조금만 건드려도 울림이 일어난다고 하며 성령께 맡겨 드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나의 그런 성향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간혹 칭찬을 들을 때도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라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거짓된 겸손으로 겸연쩍어하는 것보다 칭찬해 주는 이와 더불어 성령의 손길에 감사드리며 기뻐할 수 있어서 참으로 자유로웠다.

아침 산책길에는 지난여름 태풍 탓에 뿌리째 일어서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다행히 다른 나무에 기대어 아직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기에 아침마다 그 뿌리 위에 낙엽들을 쓸어 덮어 주면서, 생명을 눈여겨보게 하시는 성령께 감사드린다. 그러고 보면 요리하는 꿈을 꾼 그날 밤도 성령께서 나의 꿈길을 잠시 들르셨던 게 아닌가 싶다.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