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정진석 추기경 주교 서품 50주년 기자 간담회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7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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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응답받은 기도, 한두 개가 아니야~ 허허”
다시 번역한 「참 신앙의 진리」 소개
사제로 살아온 삶 재치있게 전하며 하느님 믿고 따르는 자세 당부

하느님께 받은 은총이 참 많다는 정진석 추기경은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하도록 이끌어 주신다”고 말한다.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올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서 정 추기경은 부제 때 번역한 책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일치 운동’에 관한 가르침을 반영해 수정한 「참 신앙의 진리」를 소개하며 지나 온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줬다. 솔직하고 유머 넘치는 90세 추기경이 들려 준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각색해 전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사제가 되면 매년 책을 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어요.

“어렸을 때 한국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어. 그때 하느님이 왜 살려 주셨는지를 생각했지. 어떻게 보면 하느님께서 살려 주시니까 쓰는 본능이 발동되는 거야. 내가 책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느님께 달렸어. 하느님이 살려주시면 계속 책을 내야지.

하느님께 감사한 일은 매년 한 권씩 낼 수 있다는 거야. 그러려면 우선 건강해야 하고 정성이 있어야 되지. 건강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벌써 60권이 넘었어. 굉장한 은총이지. 아마 다들 미쳤다 그럴 거야.(웃음)”

-추기경님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라고요.

“내 평생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었어. 책 쓰는 거고. 평생을 책 쓰는 데 주력했지. 책을 쓰는 것은 선교가 가장 큰 목적이야. 이제 또 뭘 쓸지 고민이야. 항상 추기경이라 거절하지 못하는 출판사와 하느님께 고맙지. 허허.”

-이번에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실천 내용을 담은 「참 신앙의 진리」(존 오브라이언 신부 지음, 정진석 추기경 편역) 개정판을 내셨어요. 추기경님께서 부제품을 받았던 1960년에 번역하신 책이라 감회가 남다르시죠?

“원래 제목은 「억만 인의 신앙」이었어. 신학생 때 방학이 되면 놀 줄 모르니까 휴가도 안 가고 이 책을 번역한 거야. 이 책이 당시 수도회에서 기본 참고서가 돼서 아주 잘 팔렸지. 또 부제가 번역한 책이라고 이름을 날렸어.(웃음)

책을 번역하면서 매일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했어. 미국에서 존 오브라이언 신부가 책을 쓴 다음에 신자 수가 늘었다고 하니까 나도 욕심을 좀 부려서 ‘우리도 신자가 인구의 10%가 되게 해 주세요.’ 했지. 이 책이 처음 출판됐을 때는 한국에 가톨릭 신자가 1%도 안 될 때거든. ‘과연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했지.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다우.”

-당시 불가능해 보였던 기도가 이뤄진 거네요!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받은 해 겨울에 통계표를 보니까 서울대교구 신자 비율이 10%가 넘었더라고. 평생 기도가 성취된 거지. 근데 하느님께 응답받은 기도는 한두 개가 아니야.(웃음)

사실 사제품 받을 때 땅바닥에 엎드려서도 그 기도를 진정으로 바쳤어. 서품식이 끝난 다음에 마당에 나오면 다들 무슨 기도했냐고 물어본다고. 그때 이 10%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뭐 엉뚱한 소리 하고 있어.’ 하는 반응이야. ‘쟤 참 별난 아이야.’ 했지. 그게 내 별명이 될 정도였어.”

-또 어떤 기도가 이뤄지셨나요.

“첫 번째 기도가 이뤄지고 나니 욕심이 나서 또 기도했지. 청주교구장 할 때 교구 내 한국 신부가 미국 신부보다 더 많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때 한국 신부가 6명, 미국 신부가 19명이었어. 그때 내 나이가 40대였지. 한국인이 6명뿐인 데다가 나이도 어린 신부가 갑자기 주교라고 왔으니 아니꼬웠겠지. 처음에는 한국 신부가 적으니까 영어로 회의를 했어. 영어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닌데 미국 신부님들 마음을 살려고 아양을 떤 거지.(웃음) 그런데 서울대교구장으로 발령 나고 보니까 한국 신부가 106명이 됐어. 28년 동안 100명이 늘었던 거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많은 국민들이 지쳐 있어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행복하게 살도록 보내 주셨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 원하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런데 자기 맘대로 살고 싶으면 하느님께 불만 생기잖아. 그럼 불평하게 되고 스스로 불행하게 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야. ‘하느님 믿으세요.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런 자세로 살면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어.”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