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 단장 마치고 문 연 서울 ‘명상의 집’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10-20 수정일 2020-10-21 발행일 2020-10-25 제 321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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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지친 이들이 머물며 하느님 위로 받기를
40여 년 넘게 운영 중인 피정의 집
노후 시설 고치고 열린 공간도 마련
모든 이에게 열린 갤러리 카페 신설
베란다·중정·야외 십자가의 길 비롯
내부 곳곳에 쉼과 기도 공간 조성해
문화·영성 공간으로 영적 선익 기대

리모델링을 마치고 10월 19일 축복식을 한 ‘명상의 집’ 외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성당을 찾는 발길이 줄어든 요즘, 오히려 전보다도 많은 신자들이 기도하기 위해 찾고 위로와 위안을 얻어가는 곳이 있다.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179길 283에 자리한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 한국순교자관구(관구장 오성균 신부, 이하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이다. 누구라도 자연과 성당 안에 머물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새 단장을 마치고 10월 19일 축복식을 연 명상의 집을 찾았다.

■ 세상을 향해 열린 공간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 우이동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하루에도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을 오르다 보면 명상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수도자들의 공간이자 피정을 원하는 이들의 공간이기에 외부인들 출입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신자는 물론이고 비신자인 등산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편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경사로를 올라 명상의 집 건물을 찾으니 ‘포올 갤러리 카페’를 비롯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나타났다. 카페 이름인 ‘포올’은 예수고난회 창립자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의 이름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For All’, 곧 ‘모든 이’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카페 이름에서 수도회가 이 공간을 마련한 이유가 그대로 드러난다.

수도회가 세검정에 자리했던 명상의 집을 이곳 우이동으로 옮긴 것이 1977년의 일이다. 전국적으로도 피정의 집이 많지 않던 당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지 많은 본당과 단체들이 이곳에서 피정과 교육을 했다. 그러나 40여 년 세월이 지나면서 시설이 노후됐고 대대적인 수선이 필요했다.

대수선 공사에 앞서 약 15~20년에 걸쳐 수도회는 고민에 고민을 거쳐 명상의 집이 오늘날 이 세상에 필요로 한 피정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왔다. 그 첫 번째가 소규모 피정이나 개인 피정을 위한 피정의 집을 마련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피정의 집이 피정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화·영성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방문자들이 편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지하 1층에 문을 만들고 층 전체를 개방된 공간으로 꾸몄다.

카페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300주년 기념 경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나 성체 앞에 앉아 머물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수도회가 세상을 향해 활짝 연 공간의 끝은 하느님을 향한 초대였다.

■ 옛 곳을 품은 새 곳

명상의 집은 40년 이상, 신자들과 하느님이 만나 온 추억의 공간이다. 예수고난회는 명상의 집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옛 건물의 자취를 아름답게 재구성해냈다. 수도회는 이를 위해 건축사와 시공사 외에도 가회동성당 건축위원으로 활동한 김미경(요안나) 작가를 미술감독으로 섭외해 명상의 집 옛 모습과 새 모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가회동성당은 한옥과 현대건물의 조화로 다수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옛 붉은 벽돌벽을 그대로 살리거나 천정 콘크리트와 배관을 노출시켜 갤러리로 재탄생시켰다. 또 1, 4층 욕실은 성미술 안에서 휴식할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변모했다. 공사중 발생한 폐자재는 야외 십자가의 길 조경에 활용했다. 옛 건축구조를 그대로 사용해 투박해 보일 법도 했지만,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부활했다.

특히 경당에 걸린 십자가는 고(故) 김범렬 작가(1949~1979) 작품으로, 명상의 집 설립 초기에 기증 받은 작품을 이번 리모델링 과정에서 재발견한 성미술이다. 뿐만 아니라 손과 어깨 등이 부서진 십자고상을 되살려 성당 십자가로 삼기도 하고, 오랜 시간 수도회 은인들을 통해 기증 받았던 성미술들을 곳곳에 배치해 빛을 보게 했다.

명상의 집 원장 오재성 신부는 “리모델링 과정이 마치 잊히고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하는 시간 같았다”며 “세상에서는 버리는 것, 쓰레기라 생각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부활하심을 묵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월 19일 ‘명상의 집’ 축복식 중 오성균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300주년 기념 경당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명상의 집’의 성당. 부서진 손, 어깨 등 복원한 십자가상을 제대에 모셨다.

모든 이가 편하게 머물다 가도록 새롭게 단장한 ‘명상의 집’의 입구.

■ 하느님 안에 머무는 곳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

명상의 집 포올 갤러리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예수고난회는 이번 리모델링의 중요한 목표를 세상에서 고통 받고 지친 사람들이 성당에, 자연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위로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입구 바로 옆에 상설고해소를 설치하고 명상의 집을 찾는 이들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명상의 집은 다양한 형태를 갖춘 ‘머물 곳’이 많았다. 성당이나 경당이 그렇고, 층마다 있는 베란다와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중정(中庭)과 피정을 하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야외 십자가의 길 등이 그렇다. 또 명상의 집 내부에는 앉아서 쉬거나 기도할 수 있는 공간들이 구석구석에 조성돼 있었다. 개인이나 소그룹으로 피정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자유롭게 머물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예수고난회 관구장 오성균 신부는 “명상의 집이 처음부터 지니고 있던 피정 집의 기능을 잘 보존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린 공간이 되고자 했다”며 “기존 피정의 집 기능에 더해 새로 마련된 이 문화·영성 공간들이 명상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영적 선익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