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55) ‘아하 그렇구나!’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0-13 수정일 2020-10-13 발행일 2020-10-18 제 321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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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 녀석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어쭈! 이 녀석 봐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하느님 아들이시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입니다.”

나는 조근조근(차근차근) 대답하는 그 녀석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게 아닌데. 얘가 교리를 잘 몰라야 되는데.’

“성령은 누구십니까?”

“성령은 인간이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조자이며, 우리를 사랑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성모 마리아는 누구십니까?”

“성모 마리아님은 예수님 어머니이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계속해서 나는 교리에 관해 질문을 했고, 그 녀석은 막힘없이 술·술·술 대답했습니다. 심지어 기도문을 물어봤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다 외웠습니다. 그 녀석의 ‘찰고’, 즉 교리 시험을 마치고 난 후 나는 기특한 마음이 들어 그 녀석의 얼굴을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 녀석도 어이없게도 나를 보며 빙그레 웃어주는데… 마치 ‘찰고’할 때 나의 근엄했던 표정이 연기임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날 저녁 나는 보좌 신부에게 그 녀석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 녀석, 늘 덜렁대서 교리도 제대로 모르고 기도문은 하나도 외우지 못할 것 같았는데, 전부 다 알고 있더라. 너무 놀랄 정도로!”

그러자 보좌 신부님은 그 녀석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그 아이 엄마는 이번 첫영성체 교리반을 할 때, 한 달 내내 뒤에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 주신 분이에요. 그리고 그 아이 아빠는 성당에 다니지는 않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신앙을 적극 지지를 해 주고 있고요. 아마도 그 아이는 엄마 신앙을 본받아서 나름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할 거예요. 또한 추측컨대 그 아이 때문에 아빠도 조만간 성당에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하, 그렇구나! 그 녀석의 부모님은 비록 외짝 교우지만, 엄마로부터 지속적으로 종교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았겠구나. 그리고 그 녀석 엄마도 자녀 첫영성체를 위해서 마음을 모아 봉사를 통해 함께 준비하고 있었구나.’

요즘 ‘미래의 세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며 하는 말은 모든 것이 다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하나, 분명하게 달라지지 않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종교심의 가치랍니다. 부모로부터 좋은 종교심을 선물로 받은 자녀는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기도할 수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자신의 장점을 돌아볼 수 있으며, 평소 지혜와 겸손을 겸비하게 해 줌으로써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나만 보면 달려와서 내 배를 만지는 그 녀석의 마음속에는 이미 ‘좋은 종교심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그 녀석 뿐 아니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번에 첫영성체를 하는 우리 본당 아이들이 예수님 몸을 받아 모시면서 언제나 좋은 아이로 잘 자라나기를 말입니다.

사족입니다만, 첫영성체라는 말만 들으면 나 또한 어릴 때 받았던 첫영성체 교리반 생각이 납니다. 어떤 교리를 들었고 무슨 기도문을 외웠는지는 기억이 없고, 교리실 뒤에서 늘 손들고 벌 받고 있던 모습만 떠오르는데…. 그랬던 나도 이렇게 세상을 나름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