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 김의태 신부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0-09-15 수정일 2020-09-15 발행일 2020-09-20 제 321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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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됐다. 가수들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힘들고 지친 우리 국민을 노래로 위로해 준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크러쉬(Crush)라는 가수를 너무나 좋아한다. 이 가수는 짙은 흑인 소울(?)을 가졌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적인 R&B 가수다. 진심인지 픽션인지 모르겠지만, 이 가수가 방송 중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들면 드라마만 봐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찌질하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수 GOD의 ‘길’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가수의 눈물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계속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 노래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고, 잠시 뒤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왜 이 길에 서 있는 것인지’,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외로웠고, 공허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질문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20여 년 동안 주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믿음에 힘입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복음에서 전하는 사제생활의 큰 덕목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제생활은 ‘나’를 버리는 삶이다. 오로지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나’를 죽이고, ‘나’를 지워야 한다는 것을 신학교 때 너무나 많이 배웠고, 사제생활 중에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그리고 기쁘게 답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어쩌면 나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괜찮다’고, ‘난 해낼 수 있다’고,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그 생각들을 꾹꾹 눌러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부족하지만 교수 신부라는 소임으로 신학교에 불림을 받았다. 학생들과 왁자지껄 살면서 사제생활의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그 기쁨 속에 찾아오는 고독, 공허함도 공존한다. 솔직하게 그 고독과 공허함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고독과 공허함은 어떤 인생을 살아도 혹부리 영감님의 혹처럼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들도 사랑 때문에 겪어야 할 대가이고, 나 역시 인간이기에 사랑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싶다. 순간의 눈물에 감사한다. 현대 사회가 주는 바쁜 일상,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단순하게 사는 법을 되찾게 된다.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