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과정과 의미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20-08-25 수정일 2020-08-25 발행일 2020-08-30 제 320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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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 성인 103위 초상화 최초로 한자리에
2018년 제작 운영위원회 구성
전국 가톨릭미술가들 참여해 77위 개별 초상화 새로 제작
36년 만에 103위 전체 갖춰
9월 4~27일 갤러리1898서 ‘피어라, 신앙의 꽃’ 특별전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및 완성에 대한 기자 간담회가 8월 19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301호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주교회의 문예위 총무 정웅모 신부, 대전가톨릭미술가회 윤여환 회장,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안병철 회장,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이은상 총무.

3년간의 제작 기간, 그리고 36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 시성된 103위 순교 성인의 개별 초상화 전체를 갖추게 됐다. 2018년 구성돼 지난 3년간 활동한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운영위원회 위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성인화 제작 과정과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 이하 문예위)는 8월 19일 오전 11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301호에서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및 완성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갖고 그간의 제작 과정과 성인화 제작의 의미, 그리고 9월에 개최되는 특별전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는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운영위원회’ 위원인 주교회의 문예위 총무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전시 준비위원회 안병철 위원장(베드로·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회장), 윤여환 화백(요한 사도·대전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9월 4~27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관에서 개최하는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피어라, 신앙의 꽃’의 가장 큰 의미는 103위 성인의 시성식이 거행된 지 36년이 지난 지금, 최초로 103위 성인 초상화 전체를 한자리에 모은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문예위가 진행한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사업을 통해 새로 제작한 초상화가 77점이고, 기존에 제작된 26위의 초상화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조신철 가롤로 등과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

안병철 위원장은 지난 3년간의 성인 초상화 제작 사업에 대해 “기존 26위의 초상화는 유명한 작가들이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새로 제작한 77위의 초상화는 전국의 가톨릭미술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교회-작가-순교성인 초상화제작운영위가 합치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는 원화 전시를 원칙으로 하되 원본 대여가 불가능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장 초상화 등 일부 작품은 부득이하게 영인본을 전시한다.

2018년 2월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 성인 초상화 제작 사업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12월에는 채색된 작품들을 검토해 인준, 조건부 인준, 비인준으로 분류해 조건부 인준 작품은 수정을 거쳤고 비인준된 12점의 작품은 재제작에 들어갔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성인다움이 느껴지지 않으면 탈락시켰다”는 것이 안 위원장의 설명이다.

또한 지난해 순교자 성월에 맞춰 진행했던 전시 일정이 1년 연기되면서, 2인이나 3인으로 함께 그려져 있던 9위 성인들을 개별 초상화로 분리하는 추가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마침내 올 6월 최종 77위의 성인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제작한 성인화들은 모두 상반신 위까지 그리고, 가로 72.7×세로 60.6cm(20F)로 크기를 통일했다.

103위 성인들을 박해 시기 별로 나눠보면 기해박해 순교 성인이 70위, 병오박해 9위, 병인박해 24위다.

성인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 뒤에 후광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10위의 성인들은 시복 시성 이전인 19세기 말에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초상화이기 때문에 후광이 없다.

순교 성인화 완성의 의의에 대해 정웅모 신부는 “그림 자체가 목적이 되는 다른 미술 작품과 달리 성인화는 그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순교 성인화는 현세적인 것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고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에 이번 전시가 신자뿐 아니라 타 종교인,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신부는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은 한국 성인화의 완성이 아니라 중간 단계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이번 전시 이후에도 앞으로 기회가 되면 교구나 관구 단위의 전시나 순교지 별, 박해 시기 별로 성인화를 전시하는 특별전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4월 3일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운영위원들이 신규 성인화 1차 완성본 실물의 완성도와 보완점을 평가하고 있다.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인터뷰 / 103위 성인 중 6위 초상화 제작한 윤여환 화백

“성스러운 얼굴 표현에 최선의 노력”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 분석하며 많은 기도와 묵상 바탕으로 작업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순교하신 103위 성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신심 깊은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의 모습에서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순교 성인의 성스러운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충남대 명예교수이자 한국인의 인물화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여환(요한 사도·대전가톨릭미술가회 회장) 화백은 103위 성인 가운데 6위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1인 1작품이 원칙인데 어쩌다 보니 6위의 성인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겸연쩍어하지만 사실 윤 화백은 우리에게 친숙한 유관순, 논개, 박팽년, 김만덕 등의 국가표준영정 7위를 제작한 초상화의 대가다.

윤 화백이 제작한 6위는 성 이광렬 요한, 성 김임이 데레사, 성 권희 바르바라, 성 손소벽 막달레나,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들인 성 유대철 베드로다.

동양화를 전공한 윤 화백은 비단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견본채색 방식으로 성인화를 제작했다.

사진이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인물들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직계 후손들의 용모를 참고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직계 후손 수십 명의 인물들을 관찰하다 보면 공통으로 추출되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교 성인들의 경우, 직계 후손이 없는 경우가 많아 후손의 얼굴 대신 신앙심이 깊은 인물들의 용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를 참고로 그렸다는 것이 윤 화백의 설명이다. 윤 화백은 이를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대상을 직접 보거나 사진 등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상화’인 성인화는 사실 작가로서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러기에 많은 기도와 묵상을 바탕으로 작업에 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인의 실제 얼굴은 아니지만 성인화를 보는 이들이 그림을 보면서 성인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신분, 직업 등의 특색을 살려 그렸다”는 윤 화백은 “성인화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103위 성인화가 나오기까지…

▲ 2017년 2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에 103위 성인 초상화 제작 추진 요청

▲ 2017년 5월 문예위,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이하 ‘한가협’)에 성인화 제작에 대한 자문 요청

▲ 2017년 7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초상화 제작 사업 승인 - 정웅모 신부, 권녕숙(리디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자문위원), 김형주(이멜다·서울가톨릭미술가회 자문위원), 한혜자(마르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윤여환(요한 사도·대전가톨릭미술가회 회장), 강희덕(가롤로·전 한가협 회장), 안병철(베드로·현 한가협 회장) 등 7명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운영위원회’ (이하 ‘운영위’) 위원으로 위촉

▲ 2018년 1월 전국 교구 미술가회 통해 참여 작가 모집

▲ 2018년 2월 9일 성인화 제작 작가 선정

▲ 2018년 2월 22일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자 워크숍’ 개최(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

▲ 2018년 12월 20일 작품 검토. 인준, 조건부 인준, 비인준 분류

▲ 2019년 6월 68위 성인화 1차 완성(작가 63명 참여)

▲ 2020년 6월 최종 77위 성인화 완성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