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48) 공동 생활과 표준말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9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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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느 수도회 동창 신부님이 순례를 하는 도중에 내가 있는 성지에 순례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성지 마당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분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성지 마당 안으로 들어오기에, 인사를 하려고 얼굴을 봤더니 몇 년 동안 본 적이 없던 동창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나를 금방 알아봤고, 내가 성지에 있는 줄 몰랐던 건지 너무나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야, 니 석진이 아니가. 와, 반갑다. 우리 억수로 오랜만에 만났다, 그제! 니 지금 어데 있노? 아, 여기 성지에 있나?”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 신부님의 얼굴보다, 서울에 살면서 모처럼 들어보는 리얼한 악센트의 구수한 사투리가 더 반가웠습니다.

“나, 그래, 이곳 본당에 살고 있다. 지금 순례 중이니?”

“어, 맞다. 그라고 내 지금 혼자 순례한다. 오늘 와이리 덥노. 물 한 잔만 주라.”

“그래, 사제관에 들어가자.”

사제관에 들어오자마자 동창 신부님에게 시원한 얼음물 한 바가지를 줬더니, 쉬지도 않고 그냥 꿀꺽꿀꺽 – 다 마셨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서품 받고, 몇십 년 동안 못 나눈 뒷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서품을 받은 후 양성 담당을 하다가, 병원과 피정의 집에 있다가, 수도회 비서 일을 했었고! 그러다 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유학도 잠시 다녀왔고, 학위도 끝낸 후 얼마 전에 안식년을 지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동창 신부님은 열심히 살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야, 그동안 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지금 수도회 안에서 형제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겠다.”

“귀감? 귀감이라꼬? 말도 마라. 내는 지금까지도 우리 수도회 후배 형제들한테 무서운 선배로 남아 있다.”

“아니, 왜?”

“그게 뭐, 문화적 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내 개인적인 문제도 있다.” “아니, 뭔 문제래?”

“사실 옛날에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좀 알겠더라. 얼마 전에 사제서품을 앞둔 부제님하고 대화한 적이 있는데, 부제님이 내 한테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은 참 좋은 분이신데, 평소 대화할 때 보면 말투나 억양, 어감들이 너무 세서, 저도 그렇고 다른 형제들도 조금은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카더라. 내 성격이나 속마음은 전혀 안 그런 거 아는데. 젊은 형제들 사이에서는 무서운 선배로 생각한다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듣고, 뭔 말인지 몰랐거든.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알겠더라. 예전에 수도회에 갓 들어왔을 때, 장상 수사님이 틈틈이 강조하셨던 말씀이 있었거든. ‘공동생활을 할 때면 표준말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거라’고. 장상 수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건만, 내가 그 말을 안 듣고 주구장창 사투리만 썼으니. 아무래도 서울이나 경기도가 고향인 형제들한테는 내 말투가 좀 억쎈 선배로 보였겠더라. 근데 마, 우짜겠노, 이노므 사투리, 우째 고칠끼고. 그래도 요즘 포(?)준말을 쓸라꼬 억수로 노력 칸다.”

“아하,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 생활에서 때론 사투리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네!”

그 신부님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야야, 그런데 표준말 그거, 억수로 어렵데이. 단어만 표준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억양도 마, 표준 억양이 있는 갑더라. 가끔 내가 표준말을 쓰면 형제들이 어색해하거나, 그냥 웃어삔다. 그래도 뭐, 형제들하고 좋은 관계를 잘 맺을라카면 우짜겠노, 뭐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안 되긋나. 그런 게 다 수도 생활 아이가!”

동창 신부님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동창 신부님 마음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