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생활 60년 맞아 회고록 펴낸 메리놀 외방전교회 함제도 신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8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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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내 마음의 고향,  가난했지만 함께였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죠”  
1960년 사제품 받자마자 한국 땅 밟아
한국인의 마음 닮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선교
30년 동안 방북하며 가난하고 아픈 이들 지원
북한, 그리스도 사랑으로 바라보고 대화해야

한국과 사랑에 빠져 이 땅에서 60년을 선교사로 살아온 함제도 신부는 ‘대화’와 ‘민족 화해’,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쾌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할아버지, 메리놀 외방전교회(이하 메리놀회) 한국지부 함제도(Gerard E. Hammond·87) 신부가 사제수품과 한국 생활 60년을 맞아 회고록 「선교사의 여행」(남북한을 사랑한 메리놀회 함제도 신부 이야기)을 펴냈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 연구팀과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내용을 엮었다.

8월 12일 서울 신길동 메리놀회 한국지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함 신부를 만났다. 사제수품 60주년 감사미사는 다음날인 13일 오전 11시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봉헌했다.

193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함 신부는 1960년 뉴욕 메리놀회에서 사제품을 받자마자 한국으로 왔다. 절친한 친구였던 고(故) 장익 주교가 한국에 꼭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1지망을 한국으로 썼고 서품 받기 직전 한국 임명을 통보 받았다. 그렇게 그의 첫사랑이 시작됐다.

한국전쟁 후 가난한 한국 땅을 밟으며 두려움이 가득했던 첫 마음은 점점 한국인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채워졌다. 그는 중간 중간 한국식 유머를 천진스럽게 섞어 가며 한국어를 구사했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고~ 아유~ 나는 6개월이나 6년 뒤에는 돌아가야지 생각했는데 벌써 60년이 됐네요. 제가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일어나자마자 제 마음이 한국인의 마음을 닮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매일매일이요. 그렇게 한국 사람으로 살면서 3가지를 배웠는데~ ‘분수(알기)’와 ‘눈치’, ‘인내심’ 같은 거요.(웃음)”

사제로 살아온 60 평생 청주교구에서 본당 사목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함 신부는 “청주가 매미 고향”이라고 했다. 맴(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이었다. 책에는 그가 본당 신부로 사목하며 겪은 아름다운 일화가 많이 등장한다. 그는 “그곳에서 우리는 가난했지만 ‘함께’였다”며 “이런 모습은 신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죽어서 청주에 묻힐 겁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님이 약속해 주셨어요. 청주 성 요셉공원 성직자 묘역에 자리를 마련해 두신다고요. 그래서 저는 묏자리를 두 개 달라고 했어요. 저는 뚱뚱해서 두 자리가 필요하거든요.”

처음 약 30년을 청주교구 사제로 지냈던 그는 이후 30년 동안 60여 차례 방북하며 가난하고 아픈 북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들의 눈높이에서 ‘같이’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종교를 뛰어넘어 우리 시대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 잡쉈습니까?’ 지금은 이런 말 잘 안 쓰죠. 그 시대에는 누구나 같이 식사하고, 식사를 챙기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마음을 좀 더 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사는 게 중요해요.”

언젠가는 평양으로 갈 꿈을 잊지 않았다는 함 신부는 아쉬움도 전했다. 올해 초 서울 중곡동 메리놀회 한국지부는 그동안 지내온 거처를 떠나 신길동으로 이사했다. 한국에 남은 메리놀회 선교사 8명이 모두 여든 전후라 재정적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그는 “평양 가서 건물 짓고 선교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북한을 위해서 한국교회 교구들이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북한을 바라볼 때 진보, 보수의 논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보고 서로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 신부는 죽마고우였던 장익 주교가 하느님 곁으로 떠나기 약 2주 전 마지막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평소 장 주교와 교류하며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고 했다. 장 주교를 회상하는 함 신부의 눈가가 붉어졌다.

“장익 주교님이 우리는 친구이자 형제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3개월 먼저 태어났으니 형이라고 했죠. 농담으로 헤어지기 전에 형님이라고 불러보라고 했어요. 진짜로 장 주교님이 ‘형님~’하고 불렀고 저는 ‘오냐~’라고 했죠.(웃음) 주교님 돌아가셨을 때 한참을 울었어요.”

1980년 4월 교황훈장을 받은 함제도 신부와 축하연에 참석한 당시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오른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93년 청주교구 수동성당에서 열린 함제도 신부(가운데) 회갑 축하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0년 3월 20일 고(故) 장익 주교의 퇴임미사에 참석한 함제도 신부(맨 오른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회고록 「선교사의 여행」은…

「선교사의 여행」은 한국과 사랑에 빠진 함제도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의 삶이 담긴 이야기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함 신부는 한국에 와서 30년 동안 청주교구 사제로 지내면서 가난했던 한국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 이후 30년은 가난하고 아픈 북한 사람들을 돌봤다. 책에는 그가 살아 온 세월의 자국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은 ▲1부-삶은 기차여행입니다 ▲2부-선교사의 로맨스 ▲3부-동무, 동지, 신부 선생, 할아버지 ▲4부-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등 4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함 신부의 유년 시절과 사제가 되는 과정,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메리놀 소신학교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고(故) 장익 주교와의 재밌는 에피소드도 들려 준다.

2부는 한국에 도착한 그가 1980년대 말까지 청주교구에서 사목했던 이야기, 3부는 6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 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떠남’에 대한 함 신부의 묵상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추천사에서 “함 신부님은 눈물이 많고 늘 다정다감하셨다”며 “남북한의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며 선교사로 살아 오신 신부님의 지난 60년 삶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약력

1933. 8. 15.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1960. 6. 11. 뉴욕 메리놀회에서 사제수품

1960. 8. 29. 한국 도착(인천 월미도)

1961~1963. 성심고아원장

1964~1966. 청주교구 북문로본당(현 서운동본당) 주임

1966~1982. 청주 수동본당 주임

1970~1989. 청주 총대리

1989.10~2019.4. 메리놀회 한국지부장

1998~현재. 북한 결핵 환자를 위한 인도적 지원

2003~현재. 유진벨재단 이사

2005~2015.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총무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