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수호성인 성모 마리아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08-18 수정일 2020-08-18 발행일 2020-08-23 제 320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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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는 한국교회 성장·시련 함께해… 평화 향한 염원 들어주실 분
박해 때도 열렬했던 성모 신심 1841년 조선교회 수호성인에 성모 선포되며 신심 더 깊어져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는 전 세계에 평화와 회개 요청
남북 관계 경색된 요즈음 성모의 전구 더 간절한 상황

8월 15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중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이 평양교구를 봉헌하는 의미로 왕관을 씌운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상.

성모 승천 대축일이면서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은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했다. 봉헌식은 이날 오후 12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중 열렸다.

1927년 평양교구가 설정된 이래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 추기경이 8월 15일 발표한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에서 “신중하게 기도하고 분별해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님께 봉헌하기로 했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봉헌식이 열린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는 기쁜 날이면서 동시에 남북 분단을 낳은 민족 비극의 날이라는 현실, 2020년인 올해는 분단 75주년,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라는 시점 등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국교회는 세계 어느 교회보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공경을 보여 왔고 이번 평양교구의 파티마 성모께 대한 봉헌도 이런 한국교회 역사 안에서 그 의미를 짚어 볼 수 있다.

■ 한국교회의 성모 신심

한국교회의 성모 신심은 순교라는 전적인 봉헌에서 시작됐다. 한국교회가 태동된 서학 연구시기에 나타나고 있는 한문본 서적 중에는 성모 신심과 관련된 「매괴십오단」과 「천주성교일과」 등의 기도서가 있었다. 신유박해(1801년) 때 형조에 압수돼 소각된 서적들 중에는 성모 관련 서적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박해 상황에서도 열렬했던 당시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교회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경우 중국에서 귀국할 당시 서해바다 풍랑 속에서 성모께 전구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한국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이 거의 배편에 의지했기 때문에 조각배를 타고 황해를 건널 때 성모께 특별한 보호를 청하면서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음을 굳게 믿었다고 밝히고 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파리외방전교회)는 이러한 한국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칭송하면서 1838년 교황청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3년 뒤인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조선교구 수호성인으로 성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선포했다.

선교사들과 신자들은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1846년 11월 2일 충남 공주 수리치골에 ‘성모성심회’를 창설했다. 제4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 주교는 1861년 조선교구 내 각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을 성모 마리아에 관계된 호칭으로 명명하고 한국교회 전 지역을 성모의 보호 아래 있도록 했다.

1898년에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정했다. 1954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를 성모께 다시 봉헌했다.

30년이 지난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의 겨레와 교회를 성모께 봉헌하는 장엄 예절을 거행하면서 성모 신심은 더욱 특별한 모습으로 한국교회 안에 심어졌다.

대희년이었던 2000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성모께 한국교회를 봉헌했다.

한편 각 교회는 한 분의 수호성인만 모신다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권고에 따라 2015년부터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만을 한국교회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됐다.

지난해에는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이 파티마 성모 마지막 발현일인 10월 13일과 전날인 12일 포르투갈 파티마 현지에서 파티마 성모 발현 102주년 기념미사와 전례를 주례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무신론자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신 것”이라면서 “성모님의 말씀을 빌려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초창기부터 혹독한 시련 속에 성장해 온 한국교회는 이처럼 성모 신심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보다 넓고 깊은 성모 신심이 전개돼 왔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 서울대교구 순례기도 첫 날인 2017년 5월 13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신자들이 파티마의 성모상 앞에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한 의미

염 추기경은 올해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에서 평양교구 설정 이래 처음으로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비록 봉헌식 장소가 평양이 아닌 서울이지만 평양교구와 서울대교구의 영적 일치성을 감안할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갈라지면서 75년째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아픔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보내는 회한도 읽을 수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2019년 북미 정상회담 및 남북미 정상회담의 연이은 개최로 한때 한반도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했지만 현재 남북 관계는 어느 때보다 경색돼 있다. 이런 시점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파티마의 성모께 평양교구를 봉헌한 것은 한반도 평화 실현과 한국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신자들의 끊임없는 기도의 필요성도 느낄 수 있다.

염 추기경이 8월 12일 ‘해방 75주년을 맞이하여 교구 내 모든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모든 교구민들은 지속적인 기도, 특별히 묵주기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희생과 애긍을 통해 교구장의 지향에 동참할 것”을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 왜 파티마의 성모인가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에게 봉헌한 가장 큰 이유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다. 지난 2017년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축복한 파티마의 성모상이 그해 5~6월 전국을 순회한 바 있다. 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이 활동하고 있어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파티마의 성모는 친숙하다.

파티마의 성모는 잘 알려진 대로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한 번씩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세 어린이(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루치아)에게 발현해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요청했다. 세 가지 메시지에 담긴 세 가지 비밀은 지옥의 환시,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실천과 평화 실현 및 전쟁 종식, ‘교황의 고통’이다. 파티마의 성모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발현해 전쟁 종식과 전 세계 평화 실현을 향한 간절함을 메시지를 통해 전달한 것이다.

서울대교구가 평양교구를 파티마의 성모께 성모 승천 대축일이자 광복절에 봉헌한 것도 한반도 평화 실현에 대한 한국교회의 간절한 염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