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새로 오신 본당 신부님 / 이순아

이순아(도미니카) 수필가
입력일 2020-07-14 수정일 2020-07-14 발행일 2020-07-19 제 320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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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구가 발표한 사제 인사이동 소식을 주보에서 읽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본당에 부임해 오시는 신부님은 어떤 분이실까? 혹시 아는 신부님은 아니실까? 궁금했는데, 처음 뵙게 될 신부님이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본당 신부님께 목례만 하고 지나치는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나이 때문일까? 이번에 새로 오시는 신부님은 살아 계신 예수님처럼, 친근하게 대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신부님께서 부임하신 이튿날, 본당에서 그분이 집전하시는 첫 평일 미사를 참례하게 되었습니다.

입당 성가를 부르는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드디어 신부님께서 제대에 나타나셨습니다. 나만의 설정! 살아계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에 서 계신 신부님 모습이 변모하신 예수님처럼 비춰졌습니다. 천사가 제대에 하강을 한 듯 그 모습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때 그만 그 기대가 약간 빗나갔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셨듯이, 탁 트이지 않은 신부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분을 그냥 본당 신부님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뻤습니다. 신부님께서 본당에 부임하신 첫날, 제대 앞에서 첫 번째 드린 기도가 본당 모든 신자들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성애를 느낄 정도로 신자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이 역력해, 저 역시 신부님께서 우리 본당에 계시는 동안 내내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며 첫 미사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신부님들이 외모까지 예수님을 닮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바람입니다. 영혼이 영생에 맞닿아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지니신 그 고귀한 직무와 품위로 성스러운 향기를 가득 품고 오신 분들입니다. 이런 신부님들로 인해 본당 신자들의 5년의 신앙생활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영적 아버지이며, 예수님의 대리자이십니까? 성모님께서도 ‘사제를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시고 계십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우리 본당에 부임해 오신 지 벌써 일 년이 다 돼 갑니다. 가끔 미사 중에 수동적인 신자들 당황케 하시는 약간의 익살은 있으셔도, 본당 사목에 신자들을 실망시키시는 일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늘 신자들에게 복음을 살게 하시려는 정성된 미사,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은 듯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신 강론, 미사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 교우들에게, 손 하트로 ‘좋은 하루 되시라고’ 인사하시는 온화한 모습을 뵐 때마다, 기쁘지 않을 신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상황을 침묵으로 받아들이시며, 교회를 지키고 계신 신부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랑하면 기쁨보다는 상대의 결핍에 대해 먼저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랑의 특성입니다. 지금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고 계신 하느님 마음이 그러하실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과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는 신자들입니다. 그러나 마스크 속에 아픔을 감추고 두 눈은 웃고 있습니다. 신부님들 사랑한다고, 힘내시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이런 시련 속에서도, 삶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반면 세상이 고요해짐도 느낍니다. 그 지독한 감염병 때문에 기가 약해지셨는지, 그 고요 속에서 소곤소곤 조용히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도 듣습니다. 이 속삭임을 미사 중에 전달해 주시는 신부님들이 계셔서,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순아(도미니카)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