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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에 대한 교회의 진단과 이후의 사목방향 모색] (3) 전례와 성사생활 (하)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0-06-02 수정일 2020-06-03 발행일 2020-06-07 제 319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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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실천, 성전에서 일상으로 확장돼야… 새로운 쇄신·개혁 요구
신자들, 성당 못 가게 된 이후 상당수 주일미사 의무감 약화
물리적 대면 단절됐다고 해도 온라인이 근본 해결책 아냐
전례와 성사는 신앙생활 요점
신앙생활, 거룩한 공간에서 바깥세상으로 넓어지는 계기 
변화된 시대에 따른 영성 필요

체코 프라하 카를대학의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미국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에 기고한 글에서 “병든 세계 속 ‘텅 빈 교회’는 하느님의 표징이며 호소”라고 설파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물러간 후에도 세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심지어 다가올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세상과 교회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자적인 목소리로 가득한 글에서 그는 특히 오늘날 우리의 처지와 나아갈 바를 아주 적확한 비유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다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초대교회는 그 역사 시초에 성전 파괴를 체험했다. 그 성전은 예수님이 기도하셨고 당신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곳이다. 이에 대해 당시 유다인은 창조적이고 용기 있는 해결책을 찾았다. 곧 파괴된 성전의 제단을 유다인 가정의 식탁으로 대신했고, 제사 규정을 사적 기도나 공동 기도에 대한 규정으로 대체했고, 번제와 희생제를 입술과 생각과 마음 등의 제사, 기도와 성경 연구로 대체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회당에서 추방됐던 초창기 그리스도교도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그러니까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은 전통의 폐허 속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것을 배웠다. 지금 우리도 이와 흡사한 상황에 있지 않는가?”

미사가 중단되고 성전이라는 거룩한 공간으로부터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우리는 신앙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 당혹스러운 경험을 통해, 신앙인들은 신앙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을 요구 받았다.

■ 코로나19 이후, 주일미사 의무 준수 인식 심각하게 우려

코로나19 이후 신자들의 주일미사에 대한 의무감은 심각할 정도로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신학연구소(소장 이미영)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주일미사 의무 참석 생각의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관련기사 11면)

특히 실제 신자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일미사만 참여’하는 신자층은 2명에 1명(50.6%)꼴, ‘주일미사에 자주 빠지는’ 신자들은 무려 4명에 3명(73.4%)꼴로 주일미사를 의무로 여기는 의식이 약화됐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미사, 전례와 성사 중심의 본당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신자(39.3%)들과 사제·수도자(52.3%) 공통적으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성당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일상 중심의 신앙실천으로 의식과 구조의 변화’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전례와 성사, 거룩한 공간으로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에 대한 의식은 코로나19 이후 크게 약화됐다. 일상 중심의 신앙 실천의 확장이 필연적으로 요청되지만, 자칫 전례와 성사생활을 가벼이 여기는 잘못을 야기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4월 29일자 서한 ‘코로나 이후 교회는 어디로?’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라며 “이상적인 교회는 항상 백성과 함께, 성사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특히 “신앙생활의 외적인 관행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가상현실의 예배와 공경을 통해 개인적으로 진솔하게 하느님께 다가가고 정의를 실천한다면 구원 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경계하고 서둘러 공동체에 복귀할 것”을 당부했다.

지난 4월 12일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바티칸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가운데 소수의 회중과 성가대만이 참례하고 있다. 전례와 성사, 거룩한 공간으로서 성전을 중심으로한 신앙생활에 대한 의식이 코로나19 이후 크게 약화될 수 있지만, 오히려 성전 중심에서 일상 중심으로 확장되는 신앙 실천으로의 쇄신과 성찰이 요구된다. CNS

■ 세상으로 넓어진 거룩한 공간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과 교수) 역시 코로나19가 가져올 신앙의식의 변화에 우려를 표시한다. 윤 신부는 “전례와 성사생활이 신앙생활의 요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온라인을 통한 영성적인 측면에만 집중해 신앙생활의 핵심을 소홀히 하는 신자들이 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윤 신부는 ‘신앙’과 ‘신앙인’의 범주, ‘주일’의 의미와 개념, 그리고 주일에 담긴 주님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도 신학적, 교리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희완 신부(안동교구·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역시 비대면의 상황이 전례와 성사생활에 가져올 어려움을 지적한다.

“전례와 성사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는 버추얼(virtual·가상)이 아니라 물리적인 대면(physical presence)입니다. 물리적인 접촉의 차단이 일상화될 경우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윤 신부는 이러한 우려를 포괄하는 성찰의 방향성으로, ‘시간의 연대’를 제시한다.

“전례의 핵심은 ‘기억’(구원 사건에 대한 기억)과 ‘현존’(주님께서 함께 계심)입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체험되는 현존을, 언택트(untact·비대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광장에서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는 공간을 떠나 ‘시간의 연대’를 보여 준 사례입니다.”

가톨릭평론 박문수(프란치스코) 편집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미사 중단이 성(聖)의 해체로 체험됐다”며 “신앙생활이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위하는 것임을 자각한 이들에게 성당의 거룩한 공간이 바깥세상으로 넓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확장된 공간은 새로운 신앙생활 방식과 영성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코로나19는 신앙과 신앙생활의 포괄적 영역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확장하라는 요청을 제기한다.

■ 쇄신과 개혁의 요청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경험은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많은 무거운 도전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전혀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기보다는 세계와 교회가 이미 품고 있던 문제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토마스 할리크 신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화된 세상이 폭넓게 남긴 상처들이 이제 드러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단순한 구조 개혁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라, 복음의 핵심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교황의 지적대로, 물리적 대면이 단절된 상황에서 인터넷이나 TV 미사로 재빠르게 전례와 성사를 대체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비록 필요한 일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수단들은 소통과 접촉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기에 좀 더 정밀하고 적극적인 방안을 계발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시대적 징표는 토마스 할리크 신부의 말대로 부분적인 ‘개선’이 아니라 ‘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존재’에서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교회와 신앙인이 쇄신, 개혁될 것을 요구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