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4 / 이중교 신부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0-05-04 수정일 2020-05-06 발행일 2020-05-10 제 319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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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사목을 하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느끼고 있으니 바로 같은 교구 내 본당 신부들의 특별한 사랑이다. 그 이유는 갑작스레 본당의 미사를 맡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사랑을 받을 때가 있으니 일 년의 두 차례! 바로 판공성사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선배 신부들도 문자에 물결을 넣어가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판공성사를 매번 부활과 성탄 때 도와드리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어라? 오늘 참 이상하네.’

화·수·목·금요일 밤 8시부터 9시 반까지 매번 판공을 도와드리러 나갔던 본당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5명 정도 고해성사를 드릴 때 즈음이었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드리는 사제가 누구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사실 관심도 없다. 그런데 처음 보는 신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통회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신자가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눈물을 머금을 때도 있고, 눈물이 마른 채 무미건조하게 성사에 임할 때도 있다.

‘한 분, 두 분…, 다섯 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앉아 있는 고해실에 오신 분들이 눈물을 펑펑 쏟으시며 고해성사를 보신 경험은 처음이다. 그래도 고해성사가 끝나는 시간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신부님들이 ‘어제보다는 더 많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무엇인가의 이상한 느낌을 안고 신부님들과 다과를 하러 만남의 방으로 가던 도중 한 봉사자 자매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고해성사를 굉장히 잘 주시나 봐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신부님 방에서 나오신 분들께서 다들 눈물을 훔치시며 나오셔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 시간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해성사를 잘 주는 사제란 어떤 사제인가? 사실, 그분들의 오랜 이야기를 듣느라 훈화도 짧게 한 뒤 사죄경을 외웠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뭔가 대단한 사제를 만난 표정으로 고해성사를 잘 주는 신부라고 이야기한다. 그 순간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아, 고해성사를 잘 주는 사제란 고해성사를 잘 준비한 신자를 만난 사제가 고해성사를 잘 주는 사제이구나.’

간절함이란 무엇일까? 똑같은 상황이어도 간절함의 크기는 다르다. 같은 공간의 AA 모임에 참석하여도 서로의 갈망이 다르듯 서로의 간절함은 다르다.

같은 공간의 고해실에 들어와도 각자의 죄의 무게가 다르듯 서로의 간절함은 다르다.

이중교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