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의 평화협정, 그리고 이후 우리 모두의 소명

입력일 2020-04-21 수정일 2020-04-21 발행일 2020-04-26 제 319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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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질서의 전문 기술자’ 역할 수행하는 신앙인 되자
‘창조질서 훼손’ 반성하고 피조물들 제자리 돌려놓는 새로운 삶의 방식 고민해야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친절하게 만나고 친하게 지내며 서로 연대하는 우정 만들길

부활하신 예수님은 짙은 어둠에서 찬란한 빛으로 세상을 깨우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고통 속에서도 인류 가족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몸소 새로운 길이 되십니다. 이 길을 걷는 신앙인들은 바이러스와의 ‘평화협정’을 통한 창조질서 회복을 위해 새롭게 수행할 소명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시간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너와 나 사이에, 집과 집 사이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피조물들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인류 역사 안에는 수많은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으로 역사가 바뀐 시기가 있습니다. 현재 인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낯선 손님의 갑작스런 방문 앞에 불편을 넘어 인류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 손님은 여행 가방에서 한 순간에 넓게 그리고 멀리 확산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전염성 바이러스를 꺼내들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중순경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이 손님은 아무런 경계 없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디든지 파고듭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돼 고통받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들은 비상사태를 발표하고 이 공포스런 손님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차단의 방어벽을 튼튼하게 쌓고 나라와 나라는 등을 돌리며 서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지구 공동의 집을 찾아 온 이 낯선 손님을 마주한 우리 신앙인들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나라처럼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을 하며 바이러스와 싸워야 할까요? 백신의 개발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인류가 앞으로 안전하고 행복할까요? 지금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고통 속에서 잠시 멈춰 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읽어 내야 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우리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기 위해 갑자기 괴물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처음 작품들을 창조하실 때부터, 제자리를 각각 정해 놓으셨고, 당신 작품들에게 영원한 질서를 주시고 제 영역을 세세 대대로 정해 놓으셨습니다.”(집회 16,26-27) 그러나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만을 위한 발전에 전력을 다해 오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고 문명의 발전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해 피조물의 자리를 빼앗고, 바꾸고, 마구 뒤섞고, 조작하고, 옮기고, 없애고, 쓰레기로 버리면서 그 신비의 질서를 무참히 훼손한 것입니다. 이 질서의 붕괴는 자연재해와 기후위기를 만들었고 코로나19라는 낯선 손님은 지금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위협적인 힘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많은 생명과 사람들의 죽음의 희생을 치른 뒤에야 하느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우리 인간은 겸허한 자세로 모든 피조물에게 질서를 훼손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분노에 찬 바이러스를 위로하고 진정시키면서 평화협정을 맺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모든 국가들이 국제적인 연대를 할 것인가 아니면 각기 분열돼 함께 멸망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도려내고, 잘라내고, 바꾸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부분만을 치료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원인을 파악하고 각국이 연대해 전체적인 접근으로 과감하게 되돌아 선다면 후손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세상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19일 서울 살레시오성미유치원이 마련한 ‘가족이 함께하는 지구살리기 축제’에서 어린이들이 서울 신길동 주변을 행진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함을 알리고 있다. 이것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던져 주는 과제이기도 하다. 서울 살레시오성미유치원 제공

■ 진정한 회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기

하나의 기계가 움직이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품들이 각기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라도 자리를 잘못 찾거나 없어질 때는 기계가 결코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때 전문 기술자들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도록 함으로써 다시 작동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 질서의 전문 기술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연·사람·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자리에 있고,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 사랑의 백신’이 있기에 두려움 없이 모든 바이러스와 화해하고, ‘생태적 회심’으로 모든 피조물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느님 신비를 맡은 관리인”(1코린 4,1)으로서의 소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친절하게 만납니다. 누가 옆에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그가 옆에 있다는 것, 생명과 자연이 숨 쉬고 있다는 것, 사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만남은 시작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과 사물과 사람들에게 말 걸고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고유성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지닙니다.

둘째,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친하게 지냅니다. 만나고 만나다 보면 그 상대와 친해집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친해진다는 것은 각 피조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알고 그것이 우주에 어떤 선물이 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이 세상과 우리 모두에게 기여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고 나의 고유성을 나누면서 그 존재를 통해 나를 보며 서로에게 선물이 돼 갑니다.

셋째,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우정을 만들어 갑니다. 만나고 친해지는 과정을 통해 우정이 깊어집니다. 이 우정은 너와 나 둘만의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우주 전체적인 개방입니다. 우정 만들기는 존재 깊은 곳에 있는 하느님 꿈을 읽는 것이고 그 꿈에 담긴 소명을 다하도록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정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됐고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는 가족임을 알게 합니다.

코로나19는 인간이 자신의 자리를 찾도록 재촉합니다.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재촉합니다. 모든 우주 가족과 함께 화목하게 지내라고 가르쳐 줍니다.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안내합니다. 인간이 집으로 들어가니 자연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하늘과 공기 그리고 물이 맑아지고, 새들이 노래하고 꽃들이 피고, 숲이 숨을 쉽니다. 그들이 우리 인간을 다시 찾지 않을까봐 걱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잠시 우리는 일상을 떠나 우리 자리를 멀리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무엇이 소중한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습니다.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영(靈)을 깨워’(다니 13,45 참조) 그 영이 살아 움직이도록 우리가 새롭게 돼야 하겠습니다.

이미영 수녀(살레시오회) 서울 살레시오성미유치원 원장

이미영 수녀는 1990년 살레시오수녀회에 입회해 1994년 첫 서원을 했으며, 2000년 종신서원을 했다. 1995년 ‘환경캠프’ 프로그램을 개발해 유아교육 현장에 구현했고 2008년에는 살레시오수녀회 책임연구원으로 「유아를 위한 생태영성교육 프로그램」 1권과 2권을 출판, 보급했다. 2011년에는 대구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관점에서 보는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적 생태영성’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 살레시오성미유치원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