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잘되리라” / 임미정 수녀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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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잘되리라. 모든 것이 잘되리라.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잘되리라.”(노리치의 줄리안)

노리치의 줄리안은 흑사병으로 사회가 혼란하고, 교회는 권력다툼이 심했던 14세기의 영국 신비가이며 은수자입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살았던 줄리안의 자서전에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말이 세 차례나 반복되며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핵심메시지로 ‘하느님은 사랑이며 결국 하느님 사랑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죽음의 고통을 넘나들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줄리안의 이 말씀이 점점 길어지고 지쳐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시간을 보내는 신앙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부활전례를 신앙공동체가 함께 모여 봉헌하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을 경험하는 교회가 이 세상의 징표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무한 긍정의 이 말씀을 통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교황님은 성주간을 시작하며 온라인으로 전 세계 가정에 영상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편지에 담긴 교황님의 다정한 권고는 어려운 시기 노고를 아끼지 않은 많은 이들과 특히 홀로 집안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자고 하시며 비록 코로나19로 우리가 고립되어있어도, ‘사랑의 창의력’으로 생각과 영을 멀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줄리안 당대 은수자들도 작은 방에 고립되어 있었지만 하느님 섭리에 맡긴 영적 자유로움으로 모든 이와 연결되면서 치유와 상담자로서의 중재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본당마다 신자들과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몇몇 사제와 수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방문과 메시지를 보내며 용기를 주어 신자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또한 각종 언론매체와 소셜미디어로 소개되는 다양한 위로와 격려의 영상들은 ‘코로나19’때문이긴 하지만 어려움을 넘어 ‘사랑의 창의력’을 발휘한 새로운 소통방식과 중재의 모습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좋든 싫든 여러 범상치 않은 현상들을 가져왔습니다. 전 세계가 잠시 멈춤을 하면서 그동안 인간 편리만을 위해 무분별하게 파헤친 개발의 결과물들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업활동이 줄어들면서 대기환경이 좋아져 하늘이 투명하게 열리고, 사람들이 각자 집에 격리되면서 사라졌던 생물종과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고, 비단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 관계에서도 비록 전파로나마 서로 안부를 물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고, 소원했던 가족들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관계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으나 바이러스는 ‘평등하여’ 누구나 감염시키지만, 인간사회에 구축되어온 불평등의 구조는 감염에 그대로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치명적인 사망률을 가져온 안타까운 현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공공의료체계’를 더 잘 정비하고, 모든 이가 고르게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도적으로 도입하고, 또한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상황에서 분리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잘 구축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에 지대한 원인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적, 제도적 대안들도 제안되고 있습니다.

줄리안은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 손바닥에 있는 작은 개암나무 열매로 비유하며, 그 안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깊은 통찰을 얻습니다. 인간은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손바닥에 있는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은 다른 피조물과 함께 우리를 참으로 소중히 여기며 사랑으로 바라보십니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교만함이 지구에 가한 범죄가 참으로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사태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선하신 하느님은 우리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포스트코로나’는 모든 피조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시간이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보기에 하느님은 모든 선이시기 때문에, 만물을 지으셨고,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인간 안에 계시고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노리치의 줄리안)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