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25) 마리아, 아베 마리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3-03 수정일 2020-03-03 발행일 2020-03-08 제 318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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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혼인성사 주례도 제가 했었는데요. 그 부부는 지금 시골에서 도자기를 만들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자녀들이 태어났고, 자녀들 키우랴, 도자기 제작에 공방 운영하랴,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성북동 수도원 살 때에 그 가족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함께 온 6살, 2살 두 아들은 엄마·아빠를 닮아 귀엽고 잘생겼습니다. 수도원 마당에서 나를 처음 본 6살 난 아들은 사교성이 정말 좋은지 뛰어와서 내 품에도 안겼습니다. 그들과 함께 수도원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고 미리 준비한 과자를 먹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어떤 것으로 할까?”

그러자 남편이,

“신부님 좋아하시는 걸로 하죠.”

정말 난감한 답변에 나는 그의 아내에게 다시 물었더니 아내는,

“아무 데나 가까운 식당을 가시죠.”

부부가 똑같이 어려운 답변을 하기에, 수도원 앞 칼국수 집으로 갔습니다. 칼국수 집에 가서 자리를 잡은 후, 칼국수와 만두를 시키려는데 자매님은 칼국수를 안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아니, 여기까지 들어와서 왜 칼국수를 안 먹어요?”

“사실은 칼국수를 정말 안 좋아해서요. 괜찮아요, 신부님, 맛있게 드세요.”

“아이고, 그럼 말을 하지. 다른 식당에 갈 걸!”

“상관없어요, 신부님. 여기서 식사 마치고 또 다른 식당에 가면 되죠.”

순간, ‘헐-’ 불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다른 식당에 간다는 말이 과연 정말일까!’ 우리 일행이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자마자, 그 자매님은 어느 가게를 가리키며,

“어, 신부님, 저기 피자집이 있네요. 우리 피자 먹으러 가요.”

나는 속으로 ‘아… 진짜구나. 칼국수를 남길 걸, 괜히 국물까지 다 먹었네. 아이고!’ 그러자 형제님도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하기를,

“신부님, 피자집 가서 점심 한 번 더 드시죠?”

정말이지 피자집에 들어간 우리는 피자 큰 것 한 판과 스파게티 2개를 시켰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가족들은 처음 점심을 먹는 것처럼 맛있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도 피자 한 조각을 먹는데, 그 가족들이 ‘한 조각만 먹으면 정이 안 간다’는 말을 하기에 기어코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어 배가 너무나 불렀습니다. 그 순간, 6살짜리 그 아들도 배가 불러서 기분이 좋았던지 신나게 노래를 했습니다.

“마리아, 아베 마리아!”

그리고 그 아들은 내 배를 보더니, 드럼을 치듯 배를 두드리며 그 구절만 몇 번씩 되풀이하며 노래했습니다.

“아베, 아베 마리아!”

아이가 내 배를 자연스레 두드리는 모습에 깜짝 놀란 부모는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그 아이는 더욱 더 자연스레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가 내 귀에는 ‘아, 이 배, 이 배 말이야!’로 들렸습니다.

식성이 너무나 다른 부부였지만, ‘다르다는 것’은 그 부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주면서, 그 어떤 잔소리도 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가족 모두가 살이 쪄 보이지만, 그 마음들은 넉넉한 볼살만큼 푸근했습니다. 반대로 마음도 넉넉하지 않은 채, 살만 찐 나의 모습! 그 날, 내 배를 두드리며 부르던 그 아들 녀석의 노래 가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립니다. ‘아, 배, 아, 배 말이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