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돈, 돈…’ 그만하고 주일을 거룩하게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20-01-28 수정일 2020-01-28 발행일 2020-02-02 제 318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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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최근 한국교회의 2020년 사목활동을 전망하는 ‘한국천주교회 2020’을 발간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보도매체들이 공통적인 제목을 뽑았다.

“신자 수는 늘고 있지만, 미사 참례는 갈수록 안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사 참례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며 통계수치를 밝혔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한 게 없는 듯 알리지를 않았다.

나는 혼자 속으로 그 이유들을 궁금해 하다 갑자기 소스라쳤다. 정작 나 자신이 당사자였던 것이다. 고백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한동안 본당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았다. 이웃 성당에서 미사를 보거나, 이런저런 기회에 미사를 보기는 했지만, 본당 미사는 외면했다. 그러다보니 신자의 의무인 주일미사를 아예 소홀히 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본당에서 성당을 건축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주임신부님의 주일 미사 강론은 ‘헌금’에 관한 내용 일색이었다. 주보 뒷면의 본당 소식란은 수시로 건축 헌금을 낸 이들의 이름과 액수가 실렸다. 그러다가 건축 헌금뿐 아니라 일반적인 봉헌금까지, 강론은 주로 ‘돈’을 소재로 삼게 되었다. 교무금의 액수를 A급, B급, C급으로 나누면서 A급 신자들은 따로 실명을 거론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일미사를 이웃 성당에 가서 보는 신자들이 늘어나자 강론을 통해 이들 신자를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괴로웠다.

주일미사가 무엇인가. 일주일간 몸부림치던 생존경쟁의 전장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영혼에 낀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는 안식의 시간이다. 그런데 세속보다 더 세속적이다. 주일 아침이면 자꾸 발길이 머뭇거려졌고 결국 본당에 발길을 끊게 되었다.

어느덧 새 성당이 세워지고, 새 주임신부님이 오셨다. 나는 다시 본당 주일미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강론의 주조는 달라졌다. 하지만 주보 뒷면 본당 소식란은 여전히 때때로 전면을 할애해 부채금 상환과 관련한 봉헌 신자의 이름과 봉헌 액수를 알리고 있었다. 또 신부님은 농담중일지라도 봉헌금과 교무금에 대해 슬쩍 강조하곤 했다. 돈에 대한 집착이 알게 모르게 일상에 뿌리를 내린 듯 했다.

믿음과 열정 하나로 새 성당을 건축해야 하는 신부님들의 고충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봉헌금 액수와 이름을 공개해서라도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려는 심정은 또 얼마나 괴로울지.

그렇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더 많은 돈이 걷힌다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교회가 지향하는 원래의 가치와 맞바꿀 만큼 절실한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예수님 말씀이다.

많은 돈, 또는 돈을 많이 넣은 사람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 아니라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며, 돈의 액수보다는 사람의 믿음과 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신 것이다. 돈의 액수로 말하자면 이런 과부는 설 자리가,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가난한 사람, 소외받는 사람부터 챙기셨던 게 아닐까.

주일에 교회가 ‘돈, 돈…’ 하다가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면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십계명중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계명을 어기게 된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지 도시의 교회를 중심으로 돈과 물량, 효율을 우선하며 신자유주의와 양극화에 열심히 발맞추는 풍조가 팽배하다. 보도를 보면 미사 참례율 저하에 대해 교회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과연 대책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예수 말씀이 곧 대책이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십계명이 곧 대책이다. 말씀을 따르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지 않으니까 떠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아닌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