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싸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라”

최현경(아나스타시아) 명예기자
입력일 2020-01-14 수정일 2020-01-14 발행일 2020-01-19 제 317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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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이 수요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한다.

연말에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40대 초반인 우리도 그렇지만 우리 회사만 해도 요즘 20~30대 젊은 사람들은 일본의 과거사 사과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나아가야죠.”

일본과의 과거 문제는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일본의 자본으로 우리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으면 좋은 거죠. 기업은 친일이고, 뭐고 없어요. 기업 이익이 최고의 관심 사항이죠.”

“위안부 문제도, 수요 집회에 대해서도, 집회하는구나 하고만 생각하지요. 꼭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애국이나 민족을 강요하지 말아야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누는 건 나이 든 사람들의 고루한 발상 아닌가요?”

물론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하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런 생각들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제 시대 친일파가 바로 그런 생각들을 가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정말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리타분한 사람인가? 이런 저런 생각들로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싸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라.”

올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새해 두 번째 수요일인 날, 수요 시위에 나가 보았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손 팻말을 들고, 찬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수요 시위가 만 28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한다.

피리를 불며 ‘천 개의 바람’을 합창한 초등학생들의 공연이 끝나자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존 인물이신 이용수 할머니께서 학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뭉클했다.

“포기하지 않은 것이 이긴 것이다! 우리가 그 주인공이다.”

충주에서 왔다는 여고생들과 국민대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학생들, 그리고 발언대에 나와 자신있게 발언한 어린 학생들이,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를 다독여 주었다.

“교회가 세상을 외면하지 말고,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다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평화 나비를 머리에 붙이신 수녀님들의 뒷모습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신년사가 빛나고 있었다.

최현경(아나스타시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