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 사목 현장 - 고통받는 시리아 성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사진 The Holy Land Review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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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된 도시엔 잔해들만 산더미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지역 계속된 내전으로 만신창이
공원과 녹지는 묘지로 변해 의식주 비롯한 생필품 태부족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
세계 각지에서 온 후원으로 물과 전기, 기초생필품 공급 
비영리 병원 세 곳도 운영

하느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시어 인간의 역사 안에 함께하신 곳,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복음을 선포한 곳, 성지(聖地). 이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사람들, 공동체가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성지를 순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성지는, 그리고 성지의 공동체는 신음하고 있다. 특히 시리아 지역에 자리한 성지는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주세페 카풀리 신부(「The Holy Land Review」 이탈리아어판 편집자, 작은형제회)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지보호구가 관할하는 시리아 성지의 생생한 현장을 방문했다. 카풀리 신부가 전하는 성지 현장을 지면을 통해 재구성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옛 시장의 길. 알레포의 시장은 한때 시리아에서도 큰 규모의 도시 상업 중심지였지만, 현재 완전히 파괴됐다.

■ 신음하는 성지들

파괴된 건물, 붕괴된 지붕, 흔들리는 다리, 화재로 검게 그을린 집. 격렬했던 전쟁의 상흔으로 세계유산인 알레포의 성채는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리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의 동부 지역 외곽은 잔해 덩어리로 변했다. 한때 공원과 녹지가 있던 지역은 묘지들과, 그보다 더 많은 묘비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됐다.

알레포는 가나안 땅으로 가던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자신의 소에서 젖을 짜 먹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알레포의 지명은 ‘우유’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유럽각지에서 파견된 십자군이 거치는 길목이기도 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이 도시가 만신창이가 된 것은 2016년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 때문이다. 반군들과 전쟁을 벌이던 시리아 정부군은 특히 그리스도인이 많은 도시들을 집중 포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알레포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규모는 많이 줄었지만, 서부 알레포 인근에는 지금도 계속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인 면에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지역은 여전히 혼란 상태고 평화를 기대하기에 미래는 암담한 상황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본당 주임인 이브라임 알사바그(Ibrahim Alsabagh) 신부가 말했다. 알사바그 신부는 “알레포의 신자는 전쟁 전에 약 15~20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3만 명으로 줄었다”고 덧붙였다. 남아있는 이들은 가난하고 도망칠 힘이 없는 이들이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으로 유명한 다마스쿠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에는 관광객과 순례자로 가득했던 도시다. 그러나 시리아의 전쟁 후 관광객은커녕, 번화가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는 도시로 변했다. 직접적인 폭격을 받지 않아 겉보기에는 비교적 평온해보이지만, 다마스쿠스도 알레포처럼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황량한 도시에서 성 바오로본당은 더욱 활기찬 사목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에서 가톨릭 공동체를 돕고 있는 바이앗 카라카크(Bahjat Karakach) 신부는 “여기에서 불과 300m에 있는 이웃 동네는 파괴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다마스쿠스를 떠났지만,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바사르 신부는 “현재 주택난으로 작은 방 하나의 월세가 평균 월급의 2배에 달하고 있다”며 “겉보기와는 다르게,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알레포 거리에서 사람들이 폐자재를 옮기는 모습. 알레포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종이, 판지 및 금속을 재활용한다.

■ 고통 속의 기적

“현재 하루에 몇 시간뿐이지만 물을 공급할 수 있고 전기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 1300가구에 기초적인 생필품과 식량 꾸러미를 나눕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선한 뜻을 가진 분들의 후원 덕분입니다. 이것은 계속되는 기적입니다.”

전쟁의 상처를 입은 알레포. 그러나 알사바그 신부는 이 고통 속에서도 기적을 발견한다. 이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의 활동 덕분이다. 4년 전 이어지는 폭격으로 도시의 기능이 마비됐을 때 성지보호구는 수도원의 우물을 밤낮으로 퍼 나르며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절반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을 확보했다. 또 수도원의 발전기와 태양광전지로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또 파괴된 집들의 재건을 지원하고 있다.

성지보호구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본당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학습을 지원할 뿐 아니라, 전쟁과 가난으로 겪는 심리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알사바그 신부는 “인간다운 주거 환경을 복구하는 것은 내일의 희망을 내다보는 첫 단계”라며 “그러나 식량 부족과 의료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전했다.

황량해진 다마스쿠스도 성 바오로본당에서 만큼은 어린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린이들을 ‘기쁨의 손잇기 놀이’로 초대하던 카라카크 신부는 “교리 문답, 스카우트, 프란치스칸 청년, 가족 그룹 및 영성 그룹들과 같은 많은 사목 활동들로 매우 활기차 있다”고 소개했다.

본당은 매달 약 500가구에 식량을 지원하고 신생아와 어린이를 위한 우유와 기저귀 지원, 만성질환자들을 위한 약값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당의 사목활동은 이 침체된 도시 안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시리아의 성지보호구는 다마스쿠스의 이탈리아 병원과 프랑스 병원, 알레포의 세인트 루이스 병원 등 세 개의 비영리 병원을 통해 빈곤한 시리아인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등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카라카크 신부는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임무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문화를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교 인본주의를 통한 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후원과 성지보호구의 활동으로 조금씩 회복돼 가는 알레포의 모습.

알레포 거리의 아이들. 수천 명의 아이들이 가족이나 도움 없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본당이 알레포의 가난한 이들에게 매달 전달하는 식량 꾸러미.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사진 The Holy Land Review 제공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