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접붙인 기도 / 한경

한경(율리아)rn시인
입력일 2019-11-26 수정일 2019-11-26 발행일 2019-12-01 제 317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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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텅 비어/ 사는 게 고달프고/ 무언가 아쉬울 때만/ 나는 접붙이기를 한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아 나의 하느님// 이렇게 마르고 굴곡진 가지에도/ 잎이 피어나 꽃이 매달려/ 가나안의 만나가 열릴까(한경의 시 ‘신앙고백’ 중 일부)

‘쥴리아’(율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발바닥 신자이지 않았나 싶다. ME와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은 했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신실한 기도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긴박한 순간, 필요할 때만 주님께 접붙이기를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접붙인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또한 고백한다. 아들과 딸의 입시와 취업 결혼 등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주셨고, 부모님께서 대세와 종부성사로 세례를 받긴 했지만 하느님을 영접하신 기쁨을 주셨다.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65년을 해로한 두 분 금슬은 남달랐다. 연세가 들며 거동이 불편해지고 경계성 치매로 가끔씩 다른 사람인 듯 행동하는 엄마를 지극정성 돌보신 아버지. 2012년 10월 아버지마저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져 두 분이 함께 입원하셨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누워계신 부모님,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병상의 엄마에게 “엄마, 하느님 모셔야 나중에 나와 엄마가 만날 수 있지” 하자 나의 마음을 아신 듯 선뜻 하느님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하셨다.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으시고 2012년 12월 17일 엄마는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행여 엄마가 돌아가신 걸 눈치 채실까 아버지를 뵈면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뒤돌아서 닦았다.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하는 앙상한 모습으로 “니 엄마 어떠냐?”며 엄마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맘에 걸린 듯 “네 엄마 고생 많이 했다, 잘 모시라”며 당부를 하셨다. 형제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려야 편안히 눈을 감으실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니가 ‘아버지 엄마가 25일 전 돌아가셔서 진천 선산에 잘 모셨다’고 하니 갑자기 팔에 꽂힌 링거를 뽑으시더니 모든 걸 체념하신 듯 식음을 전폐하셨다. 65년을 함께 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허망하게 흔들리던 그 눈빛, 엄마가 하느님을 맞이했으니 아버지도 하느님을 맞아 천국에서 엄마를 만나시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신부님께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종부성사를 받고 며칠 후 하얀 눈을 밟으며 2013년 1월 21일 엄마를 따라가셨다.

한 달여 만에 두 분이 떠나가신 빈자리는 마치 무중력 공간 같았다. 남동생은 나의 의중을 눈치 채고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리자고 했다. 서울 대치2동성당 많은 신자들의 끊이지 않는 연도와 당시 본당 주임 홍기범 신부님께서 집전해주신 엄숙한 장례미사.

1월 강추위에도 충북 진천 배티 순교 성지 근처의 선산까지 함께 해주신 연령회장님과 회원들의 봉사에 하느님을 믿지 않던 남동생과 올케가 감명을 받았는지 교리공부를 시작했다. 말로 백번 하는 전도보다 강한 울림이었던 듯하다. 50여 일 연미사를 드리며 형제들의 믿음을 기도했지만, 봉사자의 모습과 장례미사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감사하고 큰 축복인가, 이제 일곱 남매 중 다섯 집이 성가정이 되었다. 발바닥 신자이긴 했지만, 주님은 접붙인 미천한 기도해 응답해주셨고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주님, 감사 또 감사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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