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21) 어농성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5-23 수정일 2017-05-23 발행일 2017-05-28 제 304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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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영성 활발히 전하려 ‘청소년 성지’로 선포
복자 윤유오 등 묻혀있는 선산에
의묘 만들어 순교자 17위 현양

파평 윤씨 선산을 기증받은 수원교구는 이곳을 순교자 17위를 현양하는 공간으로 일궜다. 주문모 신부 동상 뒤로 순교자들의 묘가 보인다.

박해시기. 신앙을 배워 실천하고, 먼 이국땅에서 사제를 영입해오고, 때론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순교자들. 더욱이 당시 순교자들 중에는 10~30대 청소년·청년들이 많은 수를 차지했다. 현재 청소년들에게도 이 순교자들의 영성을 물려줄 수는 없을까? 교구에는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더욱 활발히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전하는 성지가 있다. 바로 어농성지다.

논길을 따라 성지를 향하니 우거진 녹음 속에 두 팔을 벌려 순례자를 반기는 듯한 예수성심상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숲 사이로 울려 퍼지는 새들의 소리에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느낌이 물씬 든다.

성지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찾는 영적인 공간이다. 순교자를 현양하는 많은 성지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어농성지는 좀 더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이다. 순교지나 감옥터, 신자들이 살아가던 교우촌 등이 사람들의 삶과 가까운 공간이었다면, 어농성지는 묘지에 조성된 성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 성지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니, 넓은 잔디밭과 산자락에 자리한 순교자 묘역이 보였다. 수많은 묘지가 있지만, 대부분은 유해가 없는 의묘다.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조성한 묘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묘역은 순교자와 그 가족들의 묘역임에 틀림없다. 성지는 본래 박해시대 순교자들이 많이 난 집안으로 유명한 파평 윤씨의 선산이었다.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킨 초기교회의 밀사로 유명한 복자 윤유일(바오로)과 그 동생 복자 윤유오(야고보), 사촌인 복녀 윤점혜(아가타)와 복녀 윤운혜(루치아)가 파평 윤씨 중 유명한 순교자다.

긴 박해시기 동안 숨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파평 윤씨 순교자들의 종손 집안은 족보와 가문에 관한 기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차손 집안은 남아 선산을 지켜왔다. 1979년 차손 집안과 종손 집안의 가족들 사이에 연락이 닿으면서, 서로 선산과 그곳에 묻힌 신앙선조의 존재를 공유하게 됐다.

이 선산에는 복자 윤유오(야고보)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박해로 유배생활을 겪어야 했던 복자 윤유일·윤유오의 부친 윤장의 묘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종손 집안이었던 윤상순(안드레아)씨가 순교자가 묻힌 선산을 교구에 기증하면서, 교구는 선산을 성지로 개발했다.

교구는 1987년 파평 윤씨의 선산을 성지로 선포, 축복했다. 교구는 이천본당을 중심으로 파평 윤씨 순교자들과 그들과 함께한 순교자들의 의묘를 만들고 현양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성지는 우리나라에 최초의 선교사를 입국시키기 위해 밀사로 활약한 윤유일과 그 동료들, 최초로 입국한 선교사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파평 윤씨 집안의 순교자들과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순교한 순교자 17위를 현양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묘역에서 생태농원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이곳은 청소년들이 생태를 통해 하느님의 창조와 사랑을 배우는 신앙교육공간이다. 이곳에선 넓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활동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또 성당 옆에 자리한 형구 전시장은 신앙선조들이 겪은 고난을 체험하고 묵상하게 해준다.

교구는 2007년 성지선포 20주년을 맞아 어농성지를, 청소년들을 위한 성지로 새로 선포했다. 이후 성지는 해마다 청소년·청년을 위한 맞춤형 피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청년들이 가치관을 확립하고 삶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기도생활체험학교, 제대에서 봉사하며 성소를 꿈꾸는 복사단을 위한 복사캠프, 성가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찬양의 즐거움을 배우는 찬양피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성지는 본당 주일학교, 청소년·청년 단체들을 위한 위탁 피정도 실시한다.

어농성지의 십자가들.

신심을 고취시켜주는 다양한 성미술들도 눈길을 끌었다. 묘역에 세워진 윤유일과 주문모 신부의 동상은 1989년 성지 선포 당시 김배근(바오로)씨를 중심으로 대건조형연구원이 제작한 것이다. 또 성지 성당의 제대 십자가는 유봉옥(제노베파) 작가의 작품으로 예수가 숨을 거둘 때에 “다 이루었다”고 말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성지에 걸린 복자들의 초상화는 오동희 화백이 그린 것으로, 단순히 인물 묘사에 그치지 않고 순교자들의 정신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성당 앞에 세워진 ‘아버지상’은 성지를 찾은 순례자와 청소년들을 따듯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길, 길가에 수없이 서있는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꼭 저 다양한 십자가 중 하나가 내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인 듯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십자가에는 아마도 청소년들이 적은 듯한 누군가의 이름이, 누군가의 소망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신앙선조에게 물려받은 신앙 유산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해줌으로써 희망 가득한 교회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소망. 그 소망이 우리 모두의 십자가에 적혀있는 것은 아닌지 묵상하게 되는 순례길이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