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요셉 성인 Q&A

이주연 (miki@catimes.kr) ,그래픽 장지은
입력일 2016-02-29 수정일 2016-02-29 발행일 2016-03-06 제 298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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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그리스도의 양부인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는 성 요셉 성월이다. 요셉 성인은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특별한 부름을 받은 인물이다. 마리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 계획에 절대적으로 순명하면서 그 뜻을 따르는 동반자 역할을 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안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드러나지 않는다. 성 요셉 성월을 맞아 요셉 성인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알아본다.

Q : ‘요셉’(Joseph) 이름의 뜻은?

A : “하느님께서 후손 더하시기를” 의미

히브리어 ‘더하다’에서 유래했다. “하느님께서 후손을 더하시기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조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연유됐다고 한다. 예수님 시대에는 매우 흔했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Q : 출생 배경은?

A : 마태오·루카복음서 ‘다윗의 가문’으로 나와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는 요셉을 ‘다윗의 가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시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민간 신앙을 두 복음사가가 적극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Q : 복음서에 드러난 성품은?

A : 자비로우며 경건한 성품 지녀

성경을 통해 드러난 요셉은 ‘의로운 사람’ 혹은 ‘자비로운 심성’, ‘경건한 성품’의 소유자다. 마태오 복음 1장 19절에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는 대목을 읽을 수 있다. 당시에는 약혼만 해도 이미 완전한 결혼 의향으로 맺어진 부부로 간주됐다. 그래서 약혼녀가 다른 사람과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이혼이나 혼인 무효 사유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요셉의 결정은 친절하고 자비로운 심성에서 우러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의롭다’는 평판을 법을 어기지 않고 충실히 살아가려 노력한 삶으로 해석해 본다면, 요셉은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 율법주의에만 경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또 “성령으로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태 1,20-21)는 천사의 말에 요셉은 임신에 대한 의혹을 떨치고 마리아를 보호하는가 하면 갓 태어난 예수와 마리아를 위해 이집트로 피신을 떠난다. 하느님 뜻에 따르려는 경건함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결례를 위해 온 가족이 예루살렘을 찾은 사례에서도 깊은 신심을 엿볼 수 있다. 당시에는 남자 아이일 경우 40일 후에, 여자 아이는 80일 후 출산한 여인만 가서 정결례를 치러도 가능했고, 맏이를 바치는 것도 비용만 내면 허용됐다. 굳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Q : 생애는?

A : 결혼 당시 나이 많아… 예수 공생활 전 선종했을지도

예수님 시대 랍비들은 남자들에게 13~19세 사이에 결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의로웠던’ 요셉도 그런 면에서 이 나이를 넘기지 않고 결혼했을 것이라고 본다. 성경 상에는 예수님 공생활 동안 요셉에 대한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학자들은 50세 이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의 원복음서’ ‘토마스 유년기 복음’ 등 외경에서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할 당시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 때문에 요셉이 예수의 공생활 전 숨졌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Q : 공경의 역사는?

A : 1840년대부터 3월 ‘성 요셉 성월’로 지내

요셉 성인 공경에 대한 첫 모습은 4세기 초 동방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800~900년대 콥트교회 달력 7월 20일자에서도 기록을 살필 수 있다. 이 외 ‘성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이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은 일찍부터 교회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러나 공식적인 신심은 비교적 늦게 나타났다. 8세기, 북부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며 9~10세기경 지역 순교자 일지에 ‘주님의 양부’ 칭호가 쓰였다.

1129년에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한 성당이 처음으로 요셉 성인에게 봉헌됐다.

3월 19일 요셉 축일은 12세기경에 정착됐다. 1479년 식스토 4세 교황이 이 축일을 전 교회로 확대시켰다.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교회의 수호성인’ 으로 선포했고,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성가정의 보호자인 가장의 모범으로 공표했다. 또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노동자의 수호자 칭호를 , 비오 11세 교황은 사회정의의 수호자 칭호를 부여했다.

1840년대부터 성 요셉 대축일이 들어있는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내면서 성인의 덕을 기리고 본받는 기간을 지냈다. 1865년 4월 27일 비오 9세 교황은 3월을 특별히 성 요셉에게 봉헌된 달로 설정했다.

Q : 신심 보호하는데 기여한 인물은?

A : 대 데레사·마르가리타 성녀 등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토마스 아퀴나스, 베르나르도, 제르트루다,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 마르가리타, 제르송 등 성인과 학자들을 들 수 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할 수 있다면 전 세계를 성 요셉에 대한 신심으로 투입하고 싶다”고 했다. 마르가리타 성녀는 성 요셉을 존경하고 예수께서 요셉에게 순종하신 것을 기리기 위해 ‘주님의 기도’를 날마다 100번씩 바쳤다고 한다.

Q : 현대교회 안에서의 위치는?

A : 성가정의 가장이며 교회 수호자

교회 전체와 나라, 가정, 지역의 수호자 등으로 받아들여지며 성인의 기도와 모범을 가정과 사회에서 구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이 각별했던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 직전 공의회 준비와 성공을 위해 나자렛 성가정의 가장이요, 성교회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도움을 위탁했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도 현대교회 안에서의 성 요셉 사명을 ‘보호와 방위, 수호와 원조’라고 천명했다. 비오 11세 교황은 “요셉의 중재는 남편의 중재, 양부의 중재, 가장의 중재”라고 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으로서 요셉 성인을 꼽았고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 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다. 그리고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시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주연 (miki@catimes.kr) ,그래픽 장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