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뮤지컬 성극 ‘회심’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입력일 2015-12-15 수정일 2015-12-15 발행일 2015-12-20 제 297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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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말이 돼?
뮤지컬 성극 ‘회심’의 한 장면. 출처:문화행동 아트리
그 나라 문화의 수준과 풍미를 한눈에 보려면 국립극장에 가라고 한다. 그 나라만의 맛과 멋을 낸 특유의 작품이 그 나라의 얼굴과 속살까지를 다 보여줄 터이니 그렇다. 가톨릭에도 국립극장이 있다면. 거기만 가면 가톨릭의 맛과 멋이 듬뿍 담긴 공연이 있어서 흔들리는 나도, 방황하는 내 아이도, 불자 친구들도, 무엇보다 냉담무심 뻣뻣한 사람들 좀 끌고 가서 명태 두들기듯 두들겨 패서 말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린 아직 그렇지 못하고 그럼 개신교, 우리의 갈라져나간 형제들에겐? 거기엔 어떤 솜씨의 어떤 맛이 있을까. 그들의 공연 또한 우리, 크리스천문화의 한 부분인 것을, 무심했다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 발길이 급해진다.

부천. 일요일 낮 3시. 아르코대극장 사이즈의 2천석 예배당. 뮤지컬 성극 ‘회심’을 보려는 관객들로 꽉 찬다. 모두 그곳 ‘성도들’ 이층구조의 입체적인 무대가 근사하다. 하우스음악대신 라이브로 진행되는 복음성가도 좋고 음향도 잡음 없이 깨끗하다. “이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관극하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겁주는 공연전 멘트에 아멘 답이 우렁차다. 배경은 로마시대. 주인공은 로마황실 배우 게네시우스. 검투사경기, 음란극, 익살극 등 볼거리라면 물불을 안 가렸던 로마, 그중에서도 당대최고의 인기물은 크리스천을 비하하는 조롱극. 슈퍼히로우 게네시우스의 인기포인트는 실시간 생활연기. 조롱극1 세례. 크리스천 하나를 잡아 무대에 올린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새로 태어난다면서?” 희생자는 물에 거꾸로 처박힌다. 버둥거린다. 더 오래 담그면 더 좋겠지? 낄낄거리는 게네시우스. 관객석의 흥분은 고조되고. 축 늘어지는 희생자. 화들짝 놀란 몸짓의 게네시우스 “어머나 세상에… 그게 말이 돼?” 박수가 쏟아지고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즈음.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크리스천임을 알게 된 게네시우스. 분노하며 동생에게 전교한 유슬라를 붙잡아 무대에 올리는데. 조롱극2 순교. “죽는게 사는 거라며? 그럼 칼을 맞아도 괜찮겠다” 차분하고 의연한 유슬라. 그 앞에서 왠지 허둥대는 게네시우스. 유슬라의 목은 땅에 떨어지고 그는 십팔번 대사 “세상에 그게 말이 돼?”를 터뜨릴 타이밍을 놓친다. 지금까지 애써 쌓은 명성이 무너질 위기. 다음 공연은 반드시 히트쳐야한다. 크리스천에 대해 더 연구하자. 게네시우스는 말씀을 구해 읽… 는… 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세상에 이게 말이 돼?” 몸부림치며 눈물을 쏟는다. 회심의 순간이다. “용서해주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제 목숨을 드립니다” 이제 그의 마지막 무대. 조롱극3 회심. 이 무대에서 목이 떨어지는 역은 물론 게네시우스 그 자신이다. 객석에서 쏟아지는 아멘과 할렐루야가 우레 같다.

개신교에는 18개의 성극전문극단이 사목자와 성도들의 풍부한 지원과 관심 아래 ‘개신교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당장 공연 가능한 작품을 10개 이상 갖고 있는 극단도 많다. “누가 대학로를 일반극에만 내어주었느냐, 여기 더 이상의 공연이 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여차지차 가타부타 다 떠나 그냥 부럽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 몹시 부럽다. 가톨릭의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순교자 한 분 한 분이 이미 대하소설이시다. 그러니 가톨릭 성극극단들은 좀 더 용기와 힘을 내면 좋겠다. 사목회의 연중계획에 성극관람이 항상 들어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 신자들이 티브이에 주는 시간과 사랑의 한 부분을 뚝 떼어 내어 성극 쪽으로 인심 좋게 내어주면 정말 좋겠다.

이원희 -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