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7) 아담 코소브스키와 ‘요한 묵시록’의 세 번째 패널

최정선(미술사학자)
입력일 2014-10-14 수정일 2014-10-14 발행일 2014-10-19 제 291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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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넘어선 새 예루살렘의 ‘희망’

원형벽 돌아가며 벽화 제작 ‘특별’
‘스그라피토’ 기법 활용, 묵시록 재현
‘해와 달’, ‘천사’ 등으로 천국 모습 암시
런던 퀸 메리 대학 성 베네 채플(St. Benet’s Chaplaincy,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전체 모습.
아담 코소브스키
아담 코소브스키(Adam Kossowski), ‘요한 묵시록(The Apocalypse of St. John)의 세 번째 패널’, 런던 퀸 메리 대학 성 베네 채플.
폴란드 태생의 아담 코소브스키(Adam Kossowski, 1905~1986)는 전쟁 난민으로 영국에 이주해 온 작가였다. 회화 뿐 아니라 벽화 및 세라믹 작품을 주로 했던 그는 폴란드에서 보다 영국 가톨릭계에서 더 유명하다. 바르샤바 기술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했지만 2년 뒤 회화로 전환했고, 크라코프(Cracow) 조형미술대학에 입학해 바벨 성(Wawel Castle)의 회화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바르샤바의 조형미술 아카데미로 돌아간 뒤 정부 보조금으로 로마와 피렌체, 나폴리,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 미술을 경험하기도 했다. 결혼 후 그는 바르샤바 미술 아카데미에서 선임조교로 일하며 바르샤바 중앙역 내부 인테리어 공모전에 입상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후 그의 삶은 큰 시련을 겪게 된다. 그는 침략해 온 러시아 군에게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체포, 감금됐고 재판 판결 후 강제 수용소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용소의 고통 속에서 그의 신앙심은 더 열렬해졌다. 이후 영국에서 자유를 되찾은 코소브스키는 당시를 회고하며 힘겨웠던 시간들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작가로서의 의무를 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이라는 유화로 상을 수상한 후, 가톨릭 예술가 길드(Guild of Catholic Artists) 회장이자 조각가였던 린제이 클락(Lindsey Clasrk)에게 길드에 참여하도록 권유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에일즈포드(Aylesford)에 소재한 수도회로부터 <켄트: 에일즈포드 갈멜회의 역사 Kent: History of the Carmelites of Aylesford> 7개 패널과 세라믹 프로젝트의 하나인 <묵주 기도 길 Rosary Way>을 주문받았고, 이후 런던의 성 에이든(St Aidan) 가톨릭 성당 세라믹 벽화, 퀸 메리 대학(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성 베네(Benet, 성 베네딕토의 줄인 말) 채플 벽화 등 1953년부터 1970년까지 코소프스키는 대규모 벽화와 부조를 완성하면서 가톨릭 교회미술 작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다져갔다.

그의 작품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주문된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성 베네 채플 벽화를 주문한 곳은 국교회 소속 채플(대학부속 건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40년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된 후 새로 지어진 이 베네 채플은 퀸 메리 대학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부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건축 디자인됐다. 2014년 영국 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런던 이스트 앤드(East End)의 랜드마크가 된 이 채플은 독특하게도 원형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원형 채플 벽을 돌아가며 요한 묵시록의 내용을 7개 주제로 나누어 제작됐다. 또 각각의 주제와 주제 사이에는 복음사가들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와 묵시록의 저자 요한, 성 베드로와 바오로를 그려 넣었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그려진 이 벽화는 ‘스그라피토’(sgraffito)라는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는 서양의 건축 공예기법의 하나로 초칠도료가 마르기 전에 선각으로 긁어내는 방법이었다. 마치 파트모스 섬에 유배된 요한이 인간의 상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환시들을 상직적인 언어로 써 놓았듯이 벽화는 밤하늘을 도해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운 묵시록 판화처럼 보인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umlrer, 1471~1528)의 판화에서 본 듯한 네 마리 말과 기사(정복과 전쟁, 여성과 죽음을 상징하는), 아들을 낳은 여인을 위협하는 일곱 마리 용, 심지어 최후의 심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형상은 종말의 전형적인 형상들이다. 이에 반해 해와 달, 생명나무와 생명수, 희생된 어린양과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과 천국의 형상은 종말 가운데 존재하는 희망의 아이콘들이다. 하지만 이 벽화는 아수라장이 된 세상이나 잔혹한 악의 형상들마저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공포와 절망이 아닌 새로운 예루살렘을 찾아 떠나는 환상적인 비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코소브스키의 혜안(慧眼)은 박해에 처한 교회와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요한 묵시록이 대재앙과 파멸을 계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음을 이미 알았던 것일까. 채플에 들어선 나는 눈을 감고, 망각의 시간에서 나와 ‘오래된 미래’를 찾아나서는 평화를 얻은 적이 있었다.

최정선씨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 중이며,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최정선(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