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6) 함평시장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11-19 수정일 2013-11-19 발행일 2013-11-24 제 287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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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에 젖고 ~
넉넉한 인심에 웃고 ~
사람 냄새 정겨운 장터 …
일주일을 7일로 여기지 않던 때에는 장날이 바로 휴일이었다. 장이 열리는 날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뿐만 아니라 씨름판, 놀이판이 벌어졌고, 장날에 맞춰 온 보부상들에게 이런 저런 지역 소식을 듣는 교류의 장도 펼쳐졌다. 시장 한 쪽에서는 뻥튀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탁주와 함께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장이 들어서는 날은 축제의 날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상설시장들조차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오일장을 찾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찾아 시장을 찾곤 한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끔 이끈다.

1903년 개설된 함평5일장은 2, 7일 마다 열리며, 전국 5대 우시장인 함평 우시장과 함께 유명한 장터였다. 2003년 대대적인 시설 정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함평5일장은 한옥형 장옥과 천막형 구조물을 통해 전통시장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 아침을 여는 사람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새벽이지만 밝은 불빛 아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꼼꼼히 소들을 지켜보고 흥정을 시작한다. 한쪽에는 송아지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서로의 체온으로 쌀쌀한 바람을 막아서고 있다. ‘함평 큰 소장’이라 불리는 함평 우시장의 하루는 이렇듯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백 원도 못 깎아줘. 절대로 못 깎아. 내가 이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주변에 몰린 사람들에게 엄포를 놓던 소 주인이 자기 소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주인은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상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깎기 위해 치열한 기 싸움을 시작한다. 다른 한 쪽에서는 힘 싸움도 벌어진다. 방금 도착한 소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아 끌어내기 위해 한참 힘쓰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소가 외양간에만 놀다가 낯선 데에 와서 놀랐는데 그렇게 막 사진 찍으면 더 놀라지.”

방금 전까지 날이 선 목소리로 흥정하던 사람들이 거래가 끝나자 여유를 갖고 기자에게 한 마디씩 건넨다. 뿌옇게 밝아오는 먼동처럼 사람들의 표정도 환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일어날 시간이지만 우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일 하나를 치렀다.

“예전에는 경매도 없이 바로 흥정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다 경매로 하고 여기도 참 많이 바뀌었어.”

좋은 소를 사기 위해 오전 4시부터 소들을 꼼꼼히 지켜본 천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56·광주대교구 영광본당)씨는 13년 전부터 이곳 함평 우시장이 열릴 때마다 오고 있다. 천씨는 “이제 중국도 소고기 맛을 알아서 앞으로 소 값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며 “시세를 알기 위해서라도 꼭꼭 우시장을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평 우시장에서 흥정이 끝난 소를 새 주인에게 인도하려고 하고 있다.
나비 축제로 유명한 ‘함평’, 시장 곳곳에서 나비 문양을 찾을 수 있다.

■ 먹거리 한마당

우시장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근처 식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따끈한 콩나물국밥과 선짓국은 이미 주문이 폭주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생고기 비빔밥’을 시켰는데 이것 또한 별미다.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굳은 몸이 식사를 마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풀려있었다.

양파, 마늘, 고추를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 시원한 맛이 일품인 무안 양파, 고운 빛깔의 함평 고추, 영광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생선으로 요리한 음식들도 지나가는 이들의 발을 붙잡는다. 낙지 역시 함평이 자랑하는 먹거리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장을 찾은 사람들은 그 시절에 먹던 군것질거리들 앞에서 멈춰서곤 한다. 입에 넣으면 십리를 갈 때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하는 ‘십리사탕’과 땅콩 캐러멜, 뻥튀기와 튀김, 어묵, 호떡 등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많은 간식들이 시장 곳곳에 있다. 시장 입구에서는 자기 머리의 두 배 크기의 솜사탕을 받으며 환호하는 아이의 모습과 넉넉한 인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찾은 가족들이 튀김을 먹고 있다.
함평 ‘생고기 비빔밥’.

■ 그래도 희망이다

김장을 앞둔 주부들이 바쁜 걸음으로 시장을 돌고 있다. 젓갈부터 배추, 무, 양파, 고추, 마늘 등 없는 것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싸고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있다.

“이 미나리 싱싱하니 진짜 좋아 싸게 줄게, 가져가.”

모복순(바실라·72·광주대교구 함평본당)씨의 말을 듣고 어르신 한 분이 주저 없이 미나리를 집어 든다. 싱싱한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30년 넘게 함평5일장에서 장사를 해온 전문가답게 그냥 구경하러 온 사람인지 손님인지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모씨는 손님이 없어도 잠시도 쉬지 않는다. 미나리가 빠진 자리를 다른 물건들로 채워 넣고, 상품 진열을 바꿔 보기도 한다. 판매대의 피망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나물들은 여전히 생기를 내뿜고 있다.

“마트에 비하면 우리 상품들은 정말 좋아. 우리는 산지에서 바로 가져온 것을 그날 아침에 갖다 놓거든.”

상품에 대한 자신감을 말할 때쯤 옆에 생선가게에서 숭어가 난리를 피웠다. 자신의 싱싱함을 온 몸으로 알리는 듯 했다. “상품 좋다고 하니까 신이 나나보네”하고 주변 상인들이 거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이 장사로 자식들을 다 가르쳤는데, 이제는 손자들 과자 값 버는 정도야 그래도 그거라도 벌어야하니까 장사 계속 해야지.”

전통시장은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하면 손님이 확 줄어든다. 함평5일장의 경우 예전에는 오후 8시까지 성황이었지만, 이제는 장사가 안 돼 오후 4~5시에도 문을 닫고 들어가는 상인들도 있다. 그래도 상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가족 단위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고, 젊은이들도 처음에는 단순히 시장을 구경하러 왔다가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다시 한 번 축제의 장으로 나기 위한 준비 중에 있다.

함평5일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온 모복순씨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