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수원교구 50장면 (42)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 선종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3-03-20 수정일 2013-03-20 발행일 2013-03-24 제 283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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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로서 청빈한 삶 살며 활기찬 교구 만드는데 앞장
교구장 은퇴 후, 생명운동·북방선교에 열정 쏟으며 활동
가톨릭신문 2002년 6월 9일자 1면에 실린 기사. 2002년 6월 1일 오전 10시40분 대전 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한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는 50여 년을 넘게 사목자로서 청빈한 삶을 살며 활기찬 교구를 만드는데 힘썼다.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가 선종했다. 2002년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앞두고 날아든 비보였다. 6월 5일 오전 10시, 교구민들은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큰 슬픔 속에 고인을 애도하며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김 주교는 당시 1월 뇌출혈로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선종한 그는 50여 년을 넘게 사목자로서 청빈한 삶을 살며 활기찬 교구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장본인이었다.

가톨릭신문은 2002년 6월 9일자에 김 주교의 선종 관련 특집기사들을 싣고 그가 걸어온 길을 조명했다. 김 주교는 2001년 11월에도 가톨릭신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 은퇴사제의 삶과 신앙’에 글을 기고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던 터라 그 아쉬움은 더했다.

가톨릭신문은 김 주교의 선종 이모저모를 통해 선종 이후 이뤄진 일들을 차례대로 보도했으며, 장례미사 참석자들에게 고인의 회고록 3300권을, 전국 각 교구와 본당에 상본 5만장을 배포했다는 사실 등을 상세히 알렸다.

당시 김영옥 총대리 신부는 “교구민들에게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김 주교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나 황망하다”며 “김 주교님께서 땀과 열정으로 일구어낸 교구 발전을 잘 계승할 수 있도록 후배 사제들과 교구민들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1974년 11월 제2대 교구장으로 착좌한 후 1997년 6월 은퇴하기까지 23년간 교구민들과 애환을 함께하며 교회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특히 주교회의 의장,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사목표어 아래 교구장 은퇴 후에도 생명운동과 북방선교에 열정을 쏟고, 수차례 중국 현지를 방문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으며, 한국교회 발전에 헌신한 고인에게는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