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차원에서는 하느님과의 합치, 이웃과의 관계에는 연민, 나와 세상의 차원에서는 융화가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해 왔다. 합치와 연민, 융화가 교직돼 완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합치와 연민과 융화, 역량 앞에 단서가 하나 붙는다. ‘순명적’이라는 단어다. 순명적 합치, 순명적 연민, 순명적 융화, 순명적 역량이 그것이다. ‘순명’이라는 단어는 영성적 삶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인간이 완전한 합치와 연민, 융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신과 육신에 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자꾸만 합치와 연민, 융화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정신과 육신의 유혹이 참으로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 잃을 필요 없다. 하느님은 당신을 따를 수 있는 장치를 인간 안에 마련해 놓으셨다. 합치와 연민과 융화의 삶을 통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미 안배하셨다. 그것이 바로 ‘순명’이다.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 합치와 융화와 연민의 길을 달리셨다. 그 핵심에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순명이 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순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이 정신적으로 해석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석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순명했기에 아버지께 합치했고, 이웃에게 연민이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융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당신의 삶을 이끌어 가셨다.
베드로 사도도 처음에는 인간적 차원에 매몰돼 있었다. 하느님과의 합치도, 예수님에 대한 연민도, 세상을 향한 융화도 부족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으면서 달라진다. 합치했고 연민을 가졌고, 세상과 융화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전한 순명 속에서 이뤄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순명적 합치와 연민, 융화, 역량 하나하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하느님과의 합치에 대해 살펴본다.
합치는 나 자신과 하느님과 관련된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하느님과 합치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 자신을 향한 본질 탐색에 들어가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키가 얼마인지, 몸무게가 얼마인지, 외모는 어떤지, 어떤 운동에 재능이 있는지, 또 어떤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나의 핵심적 실체에 대해선 잘 모른다. 내가 웅변을 잘하는 것, 컴퓨터에 소질을 보이는 것, 심리학 박사인 것 등은 나의 본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를 비롯한 인간 개개인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본질은 나와 이웃,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순명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을 즈음 인간은 자신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체도 건장해지고, 세상을 살아갈 정신적 차원도 어느 정도 완성했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벽에 부딪힌다. 극복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쓰린 고통을 부여안고 목 놓아 통곡할 때도 많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가장 큰 절망을 맛본다. 죽을 때가 되면 우리가 스스로의 나약함 앞에서 좌절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의 도움도 청할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돈 많은 큰아버지? 권력 많은 외삼촌? 훤칠한 외모를 가진 탤런트? 아름다운 미모의 아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벗? 죽음 앞에서 도움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때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다.
결국 그 엄청난 도움과 힘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창조주 하느님 그분께 순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하느님을 마지막 순위에 놓고 세상을 살아간다. 돈과 욕심 등을 1순위로 놓고 끝없이 달린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게 창조된 존재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다 지독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느님을 찾는다.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형성시켜주신, 형성하는 신적 신비 그분께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에 그분께 복종하게 돼 있다. 그분 앞에 다 꺼내 놓고 끝나게 돼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돕겠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고기 먹고, 몸이 건강하면 뭐하는가. 먹지 못해 앙상한 몸이라도 나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의미를 구현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금 죽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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