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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ㆍ남미 주교총회 교황 개막연설 전문] 4. 진리의 전달자 - 그리스도의 증인들

입력일 2011-04-15 수정일 2011-04-15 발행일 1979-03-11 제 114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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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 모순으로 인간가치 실추
어떠한 압력하에서도 인간에 대한 진리 선포해야
「일치」는「주교단의 일치」에서부터
정치적ㆍ경제적 발전은 인간에 의해 조정ㆍ주도돼야
불신(不信) 태도는 간혹「제도적」이거나 혹은「관료적인」교회에 대해서 나타납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들의 또 다른 교회 반대되거나 소외되는 것으로「사람들로부터 생겨나고」또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와 같은 입장들은 항상 쉽게 측정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정도의 익숙한 사상적인 형태를 취할 수 있읍니다. 공의회는 교회의 본성과 사명을 우리에게 환기 시켰읍니다. 공의회는 하느님 전체 백성의 상호협력을 기대해야 할 사람들과 또 공동체사목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의 깊은 일치와 항구한 건설을 위해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읍니다. 사실『음이 교리상의 논쟁이나 그리스도교 신자들 간의 극한적 의견의 대립이나 상호불혹으로 상처를 입는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되지 않겠으며 오류와 악한 표양을 받지 않겠읍니까?』(에반젤리이 눈씨안디 77)

■인간에 관한 진리

우리가 인간에 대해 밝혀야할 진리는 맨 먼저 사람에 관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로서 우리 모두는 이 진리의 전달자들이며 대변인들인 동시 봉사자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철학체계의 원칙들이나 혹은 순전히 정치적인 활동에로 전락시킬 수 없읍니다.

우리는 또 이 진리를 망각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읍니다.

아마도 현대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결점중의 하나는 인간을 불충분하게 고찰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세대는 여러 형태의 휴머니즘과 인간 중심론이 지배하는 시대로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또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우리세대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신분에 대해 가장깊이 번민하고 이전에는 전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단계에까지 인간품위가 실추되며 또한 과거에는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정도로 인간의 가치가 유린당하는 시기입니다.

이와 같은 모순은 어떻게 설명돼야 하겠읍니까? 우리는 이것을 무신론적인 인본주의의 냉혹한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즉 그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요청인 영원에 대한 추구를 박탈당하고 있는 인간의 드라마이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최악의 상황에 놓여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은 이 문제의 깊이를 이렇게 통찰했읍니다. 『오로지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인간의 신비는 참으로 밝혀질 수 있다.』(가우디움 엣 스페스 22)

우리는 교회가 인간에 관한 진리를 갖고 있음에 대해 복음에 감사해야 하겠읍니다. 이 진리는 교회가 계속해서 보다 완전히 통찰하려 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인류학에서 발견됩니다. 이 인류학의 근본적인 주장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그래서 인간은 인간사회의 이름 없는 요소나 혹은 자연의 한 단순한 조각으로 분해될 수 없다.(가우디움 엣 스페스 12ㆍ14 참조)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 이레네우스께서『인간의 영광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하느님의 모든 활동과 지혜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다』(성 이레네우스 앗베르수스 헤레세스 Ⅲ 20ㆍ2~3)고 지적하신 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에 대한 크리스찬적 개념의 대치할 수 없는 기초에 관해 저의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특별히 언급한바 있읍니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축제입니다. 인간은 어떤 것이 수량적인 측면에서 고려될 때 포함돼야할 목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단하나의 존재이며 유일무이하고 반복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이는 영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 영원으로부터 선택됐으며 또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알려졌읍니다』(크리스마스 메시지1)

오늘날 흔히 인간을 엄격하게 경제적이거나 생물학적 혹은 심리학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거기서 생겨난 수많은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에 대항해서 교회는 자기의 스승이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인간에 대한 진리를 선포할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읍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교회로 하여금 이일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은교회가 어떤 의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또는 교회가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에 의해 더럽혀 지거나 혹은 교회본래의 메시지에 대한 신뢰부족 때문에 그 일이 중단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한 목자가『사람 안에 있었던 일을 아시는』(요한 2장 25절)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 인간에 대한 진리를 명확하고 또 분명하게 선포할 때 그는 인류에게 가장 값진 봉사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인류에 대한 이처럼 완전한 진리는 교회의 사회가르침에 대한 기초와 아울러 참된 해방에 대한 기초를 마련해줍니다. 이 진리의 빛 속에서 볼 때 인간이 경제적 혹은 정치적인 발전에 따라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 발전들이 인간에 의해서 조정되고 또 인간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교회가 가르치는 인간에 대한이 진리는 목자 여러분의 이번 총회에서 더욱더 강화돼 나타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Ⅱ、일치의 상징과 일치의 건설자들

①주교들 간의 일치

뭣보다 일치는 주교님 여러분들 간의 일치입니다. 성 사이프리안은 자기 나라에서 주교들 간의 일치를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우리는 이 일치를 수호하고 보존해야한다』고 강조하셨으며 또『특히 교회를 다스리는 우리 주교들은 주교단이 하나이며 불가분적임을 입증하기위해서 일치해야한다. 어느 누가 신자를 잘못 인도하거나 진리를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 주교단은 하나이다.』(가톨릭 교회 일치에 대하여 6-8)고 강조했읍니다.

주교들 간의 이 일치는 인간적인 계산이나 책략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그보다 더 높은 곳、즉 한분의 주님께 봉사하는데서 하나이신 성령의 이끄심을 따름으로써 그리고 하나이며 동일한 교회를 사랑하는데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치입니다. 이 사명은 라띤 아메리카 대륙이 근 5백 년간이나 전개해온 것이며 지금 여러분은 우리가 교회활동 및 인류구원의 2천 년대 막바지에 접근하고 있는 깊은 변화의 시기에 굳센 마음으로 전진하고 있읍니다. <계속><푸에블라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