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강추위를 견뎌낸 화초 앞에서…

입력일 2011-03-16 수정일 2011-03-16 발행일 2011-03-20 제 273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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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너는 나의 사랑이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입니다. 작년 겨울은 정말 길고 추웠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1월 한 달 내내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계속되었으니까요. 폭설로 인한 피해는 또 어땠습니까. 당사자들의 아픔을 뉴스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미안할 정도였지요. 그토록 엄청난 추위가 어느 순간 확 풀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게 해 줍니다. 저는 계절의 변화에서 유난히 하느님의 권능을 느끼곤 합니다. 인간이 만든 대형 히터를 수천 수만 대 돌린다 해도 어찌 이토록 단번에 온도를 높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작년 겨울, 은근히 고집을 부려 본 게 있습니다. 베란다의 화초를 거실로 들여 놓느냐, 그냥 두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결국은 그냥 두었습니다. 덩치 큰 화분들이 힘에 부쳐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내일은 조금 풀릴 거야, 내일은, 내일은, 하고 기대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게으름을 부렸던 것이지요. 그래도 한 오라기 연민은 있었던지, 화분을 창 쪽에서 거실 쪽으로 조금 끌어주고, 신문지로 몸통을 둘러주기도 하면서, 제발 우리의 전통적인 날씨 삼한사온이 회생되기를 기대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 쓴 것이 있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주던 물을, 화분이 얼까봐 햇빛 좋은 대낮으로만 한 모금씩 주면서 겨울을 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입춘 절기를 맞았습니다. 저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요. 저것들이 죽었을까, 살았을까…. 자꾸만 베란다로 나가 살펴보는데, 군자란은 워낙 강해서 진초록 잎이 끄떡없는 것 같고, 문주란은 시원찮아 보였습니다. 너부죽한 연초록 잎이 축 늘어져 아무래도 얼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거실 문을 빵긋 열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곤 했지요. ‘어떡하지? 30년도 넘게 길러온 저것이 죽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잘못인데, 미안해서 어쩌지?’

마침내 3월이 왔습니다. 햇살 좋아 쾌적한 어느 날, 모처럼 베란다 청소를 하러 나갔다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춘란 화분에 하얀 꽃이 납작 피어 있는 것입니다. 몇 해 전, 고향 선산에서 몇 그루 캐어다 심은 것인데, 그동안 꽃도 보여 주지 않아 거의 팽개쳐 둔 것 중 하나가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덩치 큰 동양란 화분에도 꽃대가 죽 죽 두 개나 올라와 있습니다. 와, 와, 고마워라…. 저는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청소하려던 것도 잊은 채 꽃들과 눈 맞추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행여나 하고 문주란 화분들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어느 새 속에서 또르르 말린 새잎들이 쏘옥 올라와 있었습니다. 아, 그 강추위를 견디며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하느님 생각이 났습니다. 하찮은 식물도 생명이기에 제 마음이 이렇게 쓰이는데, 하느님께선 자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얼마나 마음이 쓰이실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너는 나의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연민 그득한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바라보시는 하느님. 그분이야말로 오죽이나 우리를 잘 보살펴 주실까요. 성경 말씀이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 11-12)

이어서 또 하나의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좁은 화분의 공간을 온 우주로 여기며, 악조건 속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워내고 잎을 피워낸 화초들. 그 수고와 열정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지금은 사순시기입니다. 지난겨울 폭설로, 구제역으로, 그 밖에도 제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당해, 홀로 광야를 거닐며 고독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이웃들!

그들이 주님 보살핌 안에서 힘차게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