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숙한 신앙 (39) 양심적인 행위 (1)

정하권 몬시뇰 (마산교구)
입력일 2000-12-17 수정일 2000-12-17 발행일 2000-12-17 제 2230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양심적 판단은 결국 개인의 주관적 판단
“최후·최대의 기준 아니다”
하느님 법과 모두 일치 할수 없어 
공동선 지향하는 자연법·실정법을 무시하는 경우도 발생
근래에 인권(人權)사상이 보급되면서 개인의 인격의 존엄성이 강조되고 따라서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긴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인 존중이 극단으로 흐르게 되면, 이기주의에 빠져서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하는 자연법이나 실정법을 무시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의 양심이 인간의 윤리적 행위의 최후 최대의 기준인 것으로 착각하게 하여 객관적인 윤리규범이나 사회규범을 여지없이 허물어 버린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이 양심의 문제를 「누구나 타고난 착한 마음」정도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양심(Conscience)이란 무엇인가. 양심에 관한 전문 학자들의 논의는 생략하고 신학적 상식으로 말하자면, 양심은 인간 행위의 윤리성을 식별하는 이성의 실천적 판단력이다. 이 양심의 종합적 정의(定義)를 좀 더 분석해 본다.

1) 양심은 판단력이다.

양심은 냉철한 지성의 작용인 판단이지 결코 한문자가 암시하는 어진(良) 마음(心)이 아니다. 어질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올바른 양심의 소유자라는 객관적 보장이 없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정에 이끌려서 올바른 판단을 못할 수도 있으니 결코 어진 마음이 아니다.

2) 양심은 실천적 판단력이다.

인간의 판단에는 이론적인(Speculative) 판단력과 실천적인 (Practical)판단력이 있는데, 예컨대, 착한 일은 해야 하고 악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은 이론적 판단이고 지금 여기서 이 일은 좋은 것이니까 해야 하고 저 일은 나쁜 것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은 실천적 판단이고, 이것이 양심의 명령이다.

3) 선과 악을 식별하는 판단이다.

즉 양심은 사물의 진리나 허위를 식별하는 인식력이 아니고 행할 것(선)인가 행하지 말아야 할 것(악)인가를 식별하는 판단력이기 때문에 이론 연구의 규범이 아니고 실천하는 행위의 규범이다. 따라서 양심적인 사람이 반드시 큰 학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위대한 학자가 반드시 양심가 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4) 양심은 인간의 주관적 판단력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양심적 판단들이 모이면 보편타당한 행동규범이 성립된다고 착각 하고 있다. 큰 착각이다. 물론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해야 한다는 도덕률의 대원칙에 대해서는 만인의 양심적 판단이 일치 하겠지만(이런 의미에서 양심을 하느님의 법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행위의 많은 구체적인 경우에는 각자의 양심적인 판단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무수히 경험하고 있다.

양심적인 판단이라고 해도 그 판단들은 결국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에 한가지 사물에 대해서도 각자의 사상경향, 지식정도, 생활습관, 환경차이, 신앙유무 등에 의하여 여러가지 다른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누가 무엇을 양심적으로 했다고 주장할지라도 냉정하게 평가해 보아야 한다.

정하권 몬시뇰 (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