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의 가르침' 연재를 끝내며…

입력일 2003-12-07 수정일 2003-12-07 발행일 2003-12-07 제 237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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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6일자 「연재를 시작하며」로 출발한 「교부들의 가르침」이 이번 「연재를 끝내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교부학을 전공한 사제와 평신도로 구성된 필진들의 열성과 본지의 성의가 곁들여져 1년 2개월여 게재된 이 기획물은 「교부들, 특히 그들이 행한 가르침을 한국교회안에 전달하고 이해를 돕는데 크게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같은 독자들의 평가에 부응, 금명간 새로운 교부관련 기획물로 신자들의 신앙성숙에 다시 한번 기여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간 수고해주신 필진들과 또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여는 말씀/왜관수도원 이형우 아빠스

“성의 있는 게재 감사”

이형우 아빠스
「교부들의 가르침」 연재를 마치면서 먼저 그동안 연재를 맡아주신 다섯 분의 필진에게 감사드립니다. 2년 전 교부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모여 「교부학 연구회」를 설립하였고, 서로 배우는 자세로 연구하면서 한국교회 안에 교부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잘 소개할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들과 계획들이 제시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교부들의 가르침」의 연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전통 있는 대중매체인 「가톨릭 신문사」가 이 연재를 적극 제안하였고, 성의 있게 게재해준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광범위한 독자들이 그 동안 적어도 50여분의 교부들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교부들의 이름이나 내용들은 다소 생소하였겠지만, 꾸준히 애독한 독자들은 교부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점차 인식하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우리 교회의 보화와 같습니다. 성서와 성전(聖傳)이라는 계시의 두 원천에서 성전의 주요 부분이 교부들의 가르침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교리는 성서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2000년의 교회 역사, 특히 교부들의 가르침 안에서 다듬어진 것들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사론, 교회론, 전례, 영성 등등은 교부시대에 치열한 논쟁과 연구를 통해 진위가 가려지고 기본 골격이 정해지고 발전되었습니다. 따라서 교부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오늘의 교리와 전례 그리고 교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수학 공식은 외우고 있되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의 문헌은 교회의 「고전(古典)」과 같습니다. 1년 동안 연재 되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라고 하니 참고서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직접 접하기 위해서는 「교부문헌총서」를 읽기를 권합니다.

■ 교부들과 한국 교회/대전가톨릭대 장인산 신부

“교회 개혁에 일조”

장인산 신부
교부학을 전공하신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가톨릭신문의 「교부들의 가르침」에 동참하게 된 것을 매우 감사히 또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의 신자들에게 교부들의 가르침을 친숙하고 가깝게 소개하는데 같이 노력했다는 점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고 한국교회의 신자들이 교부들의 중요성과 그 가르침의 내용을 좀 더 깊이 공부하고 맛 들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교부들에 대한 공부가 한국교회에 줄 이익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는 교부들의 공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교부들은 사도들 다음으로, 교회를 심고 물을 주며 먹이고 양육한 자들로서 교회가 그들의 자상하고 지칠 줄 모르는 봉사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신국론, 10, 32, 1~3).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하는데 기여한 교부들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신학 발전에 도움

첫째, 교부학은 성서 연구에 도움이 됩니다. 사도교부들은 사도들의 직제자 혹은 그 직제자들의 제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문헌은 신약성서 특히 사목서간들에 나타나 있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신학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 표현되지 않은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후의 교부들의 글에서도 성서는 그 기초가 되고 있으며, 교부들은 성경해설을 위한 수많은 강론들과 성경 주해서들을 남겼기 때문에 이 교부들을 공부하는 것은 성서 연구에 큰 도움이 됩니다.

토착화에 한몫

둘째,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한국 교회 신학의 토착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교부시대는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스, 로마문화에 정착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복음서의 청중들은 모두 히브리인들이었으며 그래서 복음은 히브리문화권 안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이 복음이 제자들의 선교 활동을 통해 히브리 문화와는 다른 그리스문화권에 선포되면서 일종의 토착화 과정이 있었으며, 또 라틴문화권에 선포될 때에 다른 토착화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이러한 토착화의 시도 과정에서 때로는 많은 시행착오(이단과 열교)를 거치면서 발전되고 정착되어 왔습니다.

일치운동에 도움

셋째,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한국 교회의 일치운동에 도움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만큼 그리스도교의 종파가 많은 곳도 드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개신교 사이에서도 서로 극심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개신교의 종파는 성경의 자유 해석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의 해석을 고집하기에 앞서 성서시대에서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생활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잊어서는 안 될 점으로, 그 신도수가 많지는 않지만 동방 정교회가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동방 교회는 교부시대의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으므로 서방교회(로마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성공회)는 동방 교회 전승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교회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성서 그리고 서로 갈리기 전 초세기 교회의 모습, 즉 교부 문헌을 같이 연구함으로써 차이점을 함께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교회쇄신에 필요

넷째,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교회 쇄신을 위해 절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교부들은 교회 사목을 직접 맡았던 주교들이었고, 뛰어난 영성을 지닌 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교부들을 공부하는 것은 그분들이 지녔던 많은 보화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가르침의 기본정신, 모범적인 교부들의 생활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줌으로써 쇄신된 생활, 개혁된 교회 모습을 이루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 교부연구와 신학교 교육/광주가톨릭대 노성기 신부

“신학발전의 토대”

노성기 신부
교황청은 1989년에 발표한 「사제 양성에서 있어서 교부 연구에 관한 훈령」에서 교부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교황청은 교부들을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영성과 사목, 전례와 교회일치 뿐만 아니라 선교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학, 전례, 사목, 영성, 교회의 규율 등에 대한 교부들의 기여는 성서와 더불어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소중한 토대입니다』(훈령 20). 따라서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성서와 더불어 모든 신학의 기초입니다. 왜냐하면 전통과 단절되거나 과거를 소홀히 하면, 그리스도교의 살아 있는 전통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은 훈령에서 『교부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교회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훈령 60)이라고 언급하면서, 『적어도 매주 2시간씩 3학기는 교부학을 강의해야 한다』(훈령 62) 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교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교회사와 신학사의 모든 시대가 마치 똑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훈령 10)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신학교는 교황청이 누누이 강조하는 교부학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교부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신학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채 신학발전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물론 정통성도 독창성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교황청이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는 까닭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처럼, 『교부들은 사도들 이후에 교회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교회를 세우고, 목자로서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그들을 길러주었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율리아누스의 미완성 작품 반박」II, 10, 34). 훈령은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부들의 가르침과 활동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합니다(훈령 47).

교부학의 궁극적 목표는 역사적인 사실과 교부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부들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교부들의 작품을 가까이 한다면 자신들의 성소뿐만 아니라 영성 생활과 전례 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되며, 영적 보화와 순수성을 지닌 교부들의 근본 사상도 익히게 될 것입니다.

■ 교부들의 영성/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성령의 신성’ 천명”

이연학 신부
『관상은 신학과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신학의 정상적인 완성이다. 이 둘은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이다. 마치 신비주의는 거룩한 여성들을 위한 것이고, 신학 연구는 실제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거룩하지는 못한 남성들을 위한 것인 양, 교의 신학과 신비 신학, 혹은 신학과 영성이 상호 배타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토마스 머튼). 이 말에는 교부 영성의 중요한 특징이 잘 담겨 있다고 봅니다.

고대 교부들에게 영적 체험으로서의 「영성」은 신학적 사색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신학자요 사목자였지만 동시에 영성가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하느님과 맺는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이 일치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는, 아타나시우스 이후 널리 회자된 「신화」(神化, Theosis, Deificatio)의 원리를 근간으로 삼습니다.

아리우스를 거슬러 성자께서 성부와 같은 본질(신성)을 지니심을 강조한 이유도, 만일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신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아가 성령의 신성을 천명하는 것이 중요했던 이유도, 성령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부인하게 되면, 그분께서 아무리 우리 안에 내주(內住)하신다고 해도 그 때문에 우리가 신화되지는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교의 논쟁은 지성적 사변의 영역을 넘어 종국에는 우리 영적 체험의 색깔을 좌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열심히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과연 교부들에게는 신학과 신비가 둘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로부터 요한을 「신학자」(ho theologos)라고 불렀던 것도, 그가 예수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사람(요한 13, 25 참조), 즉 그분과 내밀한 접촉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내밀한 체험만이 내밀한 앎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전망 아래서라야 사목적 실천도, 하나가 된 영성과 신학에 비로소 튼튼히 연결됩니다.

모든 것이 서로 떨어져 너덜거리는 이산(離散)의 오늘, 교부들은 자기들이 누리던 저 싱싱하고 원초적인 일치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들은 참으로 말씀의 사람이었기에 참으로 교회의 사람이었고,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이었기에 참으로 사람들의 사람이었습니다.

■ 한국 교부학 연구회 소개/부산가톨릭대 최원오 신부

“공동작업 활발”

최원오 신부
2002년 1월 17일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에 교부학 관련 학자들이 모여 교부 연구와 교부 문헌 번역에 힘을 모으기로 결의하면서 「한국 교부학 연구회」(Institutum Patristicum Coreanum)가 탄생했습니다. 「학회」라는 겉모양새보다, 함께 모여 토론하고 알차게 연구하는 「연구회」라는 실속을 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 모임은 대단히 정겹고 가족적이며, 실질적인 논의와 공동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부학 연구회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무 명의 정회원과 유학 중인 네 명의 준회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으로 개신교 교부학자들과도 연대할 계획인데,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들이 한 데 모여 그리스도교의 공동유산을 함께 연구하는 아름다운 자리로 키워갈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의 이형우 아빠스께서 교부학 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아 이 모임을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 교부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꾸준히 우리말로 교부문헌을 번역해 오신 정양모 신부님, 서공석 신부님, 함세웅 신부님, 장인산 신부님, 성염 대사님과 같은 교부학 1세대 거장들도 든든하게 포진해 계십니다. 교부문헌 총서를 17년째 고집스레 출간해 오고 있는 분도출판사의 선지훈 신부, 정한교 편집고문, 김영철 편집장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지에서 교부학 및 관련학문을 전공한 회원들(김병로 신부, 김산춘 신부, 노성기 신부, 배기현 신부, 배승록 신부, 이상규 신부, 이성효 신부, 이연학 신부, 최원오 신부, 하성수 박사, 황치헌 신부)은 교부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을 전공하고 있는 네 명의 준회원(신기배 신부, 변종찬 신부, 정승익 신부, 정래곤 신부)도 머지않아 교부학 연구회에 본격적으로 합류할 전문가들입니다.

교부학 연구회가 두 해 동안 추진해 온 교부 인명 지명 통일 작업은 이제 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교부문헌 총서 번역에 힘을 모아, 우리 신자들의 영성 생활과 신학 발전에 기초가 되는 문헌을 꾸준히 소개할 것입니다. 이미 많은 회원들이 전공 분야별 교부 문헌 번역을 시작했고, 공동 집필 및 공동 번역 작업 등도 추진하고 있어, 오래지 않아 그 열매를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정기 모임은 학술발표회, 용어통일작업, 개인 및 공동 연구 성과 발표, 번역 계획 논의 등으로 엮어집니다. 제 5차 모임은 2004년 1월 12~13일에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 인명·지명 통일안/하성수 박사(한님성서연구소)

“그리스도교 일치 고려”

하성수 박사
우리나라는 신명(하느님, 하나님)을 비롯하여 성서, 신학용어 등을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상대 종파의 용어를 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러한 배타심은 그리스도교인의 정신 일치에도 부정적 요소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교부학연구회가 시도하는 인명·지명 통일도 그리스도교의 일치운동 차원에서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갈라진 교회가 같은 인명·지명을 사용한다면, 이는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차이점들 가운데 한 분야의 차이점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는 이보다 더 큰 목표인 다른 모든 용어의 일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그마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톨릭, 개신교 학자들은 인명·지명을 어떤 합의된 원칙 없이 임의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참고하는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기들을 그대로 번역하여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습니다(예: 트리엔트, 트렌토). 더욱이 일부 인명과 지명은 가톨릭 내에서도 차이가 있고,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같은 인명과 지명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치루스(Cyrus), 키로스(Kyros), 시르(Cyr), 치로(Ciro)처럼 그리 알려지지 않은 지명을 현대어에 따라 음역하면 전문가라도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명의 경우도 제롬, 예로니모, 히에로니무스 등은 일부 전문가만 같은 인명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명.지명을 통일하는 데에도 합리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에 따라 가능하면 하나로 표기하여 통일시키고자 합니다. 이러한 인명·지명 통일은 이제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철학, 서양사, 서양문학 등 서양과 관련된 학문의 공통된 문제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추구하는 목표는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통일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국어화시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