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2주년 앞두고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과 우원식 국회의장은 6·25전쟁 정전 72주년을 앞둔 7월 23일 분단과 이산의 아픔, 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레오 14세 교황의 방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유 추기경과 우 의장은 이날 오전 11시30분경 ‘잃어버린 30년’ 노래 가사가 새겨진 임진각 ‘망향의 노래비’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먼저 ‘자유의 다리’ 입구에 세워진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으로 이동했다. 이 소녀상은 2019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념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을 받아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제작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 추기경은 평화의 소녀상에 손을 얹어 기도했다. 우 의장이 “전쟁과 폭력으로 희생된 인권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천주교에서도 소녀상을 보존하는 일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하자 유 추기경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이어 이산가족들이 통일을 바라는 마음과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 ‘통일 염원 우체통’을 찾아 엽서를 작성해 우체통에 넣었다. 유 추기경은 “마음이 뜨겁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음에는 평양에서 엽서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엽서에 썼고, 우 의장은 “마주 보는 용기에서 평화가 싹틉니다!”라고 적었다.
유 추기경과 우 의장은 6·25전쟁 당시 경의선 장단역 인근에서 무수한 총탄과 폭탄을 맞아 탈선한 채로 50여 년간 방치돼 있다 임진각으로 옮겨져 보존, 전시되고 있는 증기기관차를 바라보며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겼다.
또한 6·25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임진강 철교 교각을 활용해 복원한 인도교인 독개다리를 걸으며 북녘을 바라보았다. 독개다리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지만 별도 허가 없이도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함께 걸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말한 유 추기경은 독개다리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성호를 긋고 잠시 눈을 감은 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유 추기경과 우 의장은 독개다리를 지나 민통선 철조망 인근 카페로 이동해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유 추기경은 “남북한은 같은 민족, 같은 동포이면서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로 살아가고 있다”며 “하루빨리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 네 차례 방북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셨지만, 레오 14세 교황님께는 방북을 요청드렸다”고 전했다. 또 “레오 14세 교황님은 미국인이시기 때문에 북미 관계를 풀어가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한국인 성직자로서 저도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에 임진각에 다시 올 때는, 임진각을 거쳐가는 기차를 타고 오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지난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을 처음 마주했을 때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실 분이라는 느낌이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와닿았다”고 회상했다.
우 의장은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72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흘렀고, 남북은 상호 간에 불신과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며 “교황님께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계기로 방한하시면서 북한도 방문하신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 의장은 “기회가 된다면 저도 교황님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한편, 우 의장은 지난 3월 국내 정치 상황과 관련해 “유 추기경님이 ‘정의에는 중립 없다’고 말한 것이 큰 용기를 주었다”면서 “평화에도 중립은 없고, 평화는 곧 공동선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과 우 의장은 대화 중 서로의 저서인 「명랑 주교 유흥식」과 「어머니의 강」을 각각 선물했다. 우원식 의장은 황해도 실향민 2세대로 「어머니의 강」은 실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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