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어 영국도 법안 통과…국내서도 관련 법안 발의 지속돼 ‘존엄사’ 표현으로 미화되지만 인간 생명 죽이는 ‘살인’과 같아
프랑스 하원에 이어 영국 하원에서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7월 안락사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안락사 합법화 시도가 이어져, 인간 생명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다.
영국 하원은 6월 20일 ‘생의 말기 성인에 대한 임종 선택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생존 기간이 6개월 이하로 예측되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의사 조력 자살’ 형태의 안락사를 허용한다. 5월 27일 프랑스 하원이 유사한 내용의 안락사 법안을 통과시킨 지 불과 한 달 만이다.
안락사 합법화 움직임은 서구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오리건주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에서 온 말로,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돼 불려지지만, 사실상 안락사를 의미한다. 안 의원은 앞서 2022년 6월에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개정해 발의했으나, 가톨릭교회와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제정이 무산된 후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안락사는 “모든 고통을 제거할 목적으로 그 본성에서나 의도에서 죽음을 유발하는 작위나 부작위”(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의 복음」 65항)로 정의된다. 타살, 자살을 막론하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저지르는 모든 ‘살인’은 안락사에 해당한다.
때문에 교회는 안락사를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행위”로 보고 “이는 인간 문명을 부패시키는 한편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27항 참조) 자살을 돕는 행위 역시 “요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불의한 일에 협조하는 것이며, 때로는 실질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단호히 반대한다.(「생명의 복음」 66항)
안락사 합법화 움직임은 사회의 분위기와도 맞물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의 많은 수가 안락사 합법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 허용 법안이 처음 발의된 해인 2022년 7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의사 조력 자살 합법화에 대해 찬성으로 응답한 이가 82%에 달했고, 지난 6월 주간조선이 발표한 설문에서도 찬성이 83%로 조사됐다.
이런 경향은 사회 전반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다는 방증이다. 안락사의 저변에는 생명의 가치에 차등이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생명)만 가치 있고, 고통 받는 생명은 죽여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며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58항 참조)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는 “‘특정 조건에서는 죽여도 괜찮다’는 식으로 생명의 가치를 구분하는 경향은 생명권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사회 공존의 기반을 뒤흔들게 된다”면서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신 선물이자 소명이며, 아무리 병들고 약해진 생명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의 가치는 변함없고, 그 어떤 고통 중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