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사랑공동체 서울역 해피인, 인근 쪽방촌 주민들과 연대 도시락 배달, 생필품 지원 등…“약자 위한 봉사, 성당에 뿌리내려야”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는 이제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닌, 일상의 재난이 되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7월 2일 발표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 메시지에서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점점 더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환경 정의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신앙과 인간성의 표현이고,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강조했다. 기후 재난의 최전선에 놓인 쪽방촌. 이곳에서 ‘안녕하지 못한 여름’을 살아가는 주민들과 함께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연대 현장을 소개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27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일대 쪽방촌에서는 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힘쓰는 이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사단법인 길벗사랑공동체(대표 김영민 유스티나, 지도 이재을 요한 사도 신부) 산하 ‘서울역 해피인 공동체’다.
길벗사랑공동체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다. 음식과 생필품을 나누고, 미용·의료·청소 봉사는 물론, 방문 상담과 예비자 교리, 정기 미사 봉헌까지 함께하며 이웃과 신앙 안에서 연대하고 있다.
막막한 여름…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습니다
“너무 더워서 정말 못 살겠어요. 나라에서 설치해 준 공용 에어컨은 리모컨을 누가 가져가 쓸 수도 없어요. 선풍기도 오래돼 바람이 시원치 않아요. 벌써 이런데 한여름 7, 8월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네요.”
윤혜정 수녀(스콜라스티카·살레시오 수녀회)와 봉사자 김미정(아델라이데·성수동본당) 씨가 찾은 김수인(가명) 씨의 단칸 쪽방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더웠다. 김 씨 부부는 몸만 누일 수 있는 한 평(3.3㎡) 남짓한 공간에서 낡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여름을 나고 있었다. 필요한 것이 없냐는 물음에 김 씨는 두터운 겨울용 이불밖에 없다며 여름용 이불을 청했다. 봉사자들은 김 씨 집 외에도 서울역 곳곳 쪽방을 돌며, 더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살폈다.
이날은 공동체가 쪽방촌 주민들과 점심을 나누는 날이었다. 오전부터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며 기온이 30도에 육박했지만, 봉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일찍부터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마스크 속 숨이 가빠지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힘들다는 내색 없이 웃으며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봉사자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도시락은 서울역 인근 쪽방촌 곳곳으로 전달됐다. 이 음식 나눔은 길벗사랑공동체 산하 노량진 해피인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매주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고물가 시대,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존해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식사와 생필품 지원은 생존을 위해 필수다.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가 운영하는 ‘동행식당’,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등을 통해 일부 식사와 식료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쪽방 주민 최인길(가명) 씨는 “’동행식당’이 있어서 그나마 한 끼는 해결되지만, 나머지 끼니는 어떻게 때워야 할지 늘 고민”이라며 “물가가 너무 올라 밖에서 사 먹기도 어렵고, ‘온기창고’의 물품은 금세 동나버려 결국 내 돈으로 사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 공동체에서 주는 도시락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라면, 즉석밥 등 저소득층이 자주 찾는 가공식품 위주의 생활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18일 발표한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은 19.1%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5.9%)보다 3.2%포인트 높다. 물가 상승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먼저 타격을 주고 있다.
기도와 사랑의 빛으로 꽉 막힌 쪽방 문 열리길
“해가 갈수록 여름 더위는 점점 더 심해지는데, 쪽방 주민들은 에어컨도 없는 좁은 방 안에만 계속 머물려고 합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온열 질환 위험이 커져 건강에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재을 신부는 불볕더위 속에 방 안에 갇혀 지내는 쪽방 주민들의 건강을 깊이 우려했다. 그는 이어 “방 밖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랑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치유해야 한다”며 “그 말씀이 용기가 되어 문밖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요셉 형제님. 술 조금만 드시고, 이따 미사 때 꼭 오셔야 해요. 건강하시고, 사랑해요.”
쪽방을 돌며 상담하던 윤혜정 수녀와 봉사자 김미정 씨는 기도를 마친 뒤 떠나기 전, 주민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했다. 이들은 쪽방 주민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바로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언어라고 믿는다. 김 씨는 “쪽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의 빛이 깃들기를 바랄 때, 그 빛이 퍼져나가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들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고 말했다.
공동체는 ‘주님의 기도’가 담긴 작은 간식 봉투를 전달하며,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는다. 이재을 신부는 월례 미사와 예비자 교리를 통해 영적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는 여름, 신앙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기후 재난 겪는 사회 약자들 위한 봉사 문화 뿌리내려야
이재을 신부는 “본당 차원에서도 이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신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문화가 보편화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회가 본당 사회복지를 적극 지원하고, 봉사자 양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공용 에어컨 설치, 샤워 시설 운영 등 여름철 쪽방 주민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대책을 시행 중이지만, 근본적인 주거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동자동사랑방 박승민 활동가는 “복지 정책 덕분에 여름나기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쪽방이라는 근본적 주거 환경 때문에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며 “주거권 실현을 위해서는 ‘선이주-선순환’ 방식의 공공개발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2021년 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은 2025년이 된 지금까지도 사업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이호재 기자 ho@catimes.kr
이호재 기자
h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