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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택 대주교, ‘전장연’과 대화…‘종탑 고공농성 멈추고 서로 대화 물꼬 열어’

이승훈
입력일 2025-05-14 09:20:55 수정일 2025-05-14 09:20:55 발행일 2025-05-18 제 344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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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주교, 장애인 탈시설 관련 입장 듣고 당사자·가족 안전에 우려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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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정순택 대주교(왼쪽)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박초현 서울지부 대표(왼쪽 두 번째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잇따른 성당 시위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대화에 나섰다. 정 대주교는 5월 7일 명동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전장연 관계자들과 만나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전장연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던 4월 18일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을 무단 점거하고 탈시설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걸고 고공농성과 집회를 진행했다. 이어 5월 1일에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수원교구 정자동주교좌성당 등 여러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집회를 벌였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애도 기간인 지난 4월 24일에는 정자동주교좌성당 제대에 설치된 교황 빈소의 영정 앞에 현수막을 펼치고, 추모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 앞에서 시위해 물의를 빚었다.

정 대주교의 만남 제안에 전장연은 15일간 이어진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을 종료했다. 종탑을 무단 점거한 활동가 민푸름·이학인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정 대주교는 두 활동가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두 활동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전장연의 이어진 시위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가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 폐지 청원을 진행한 것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됐다. 사회복지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이 중증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점, 자립보다 주거 전환만을 강조하는 점, 장애인 거주 시설을 일방적으로 탄압할 근거가 되는 점 등을 들며 법률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대주교는 이날 만남에서 “다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위험한 곳에서 농성하는 분들이 안전하게 내려오길 기도하고 있었다”고 활동가들의 안부를 묻고 “교회도 인권과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며 큰 틀에서는 전장연과 근본적인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고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그러나 “무연고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당사자와 가족의 의사를 존중하며 보호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전면적이고 강제적인 탈시설은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괄적인 탈시설 추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날 참석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측과 대화로 풀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농성이 길어졌다”며 “이번 만남이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정영진 신부, 사회사목국장 윤병길 신부, 문화홍보국장 최광희 신부와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박경인 공동대표, 박초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대표,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