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민경화
입력일 2025-05-14 09:22:19 수정일 2025-05-14 09:22:19 발행일 2025-05-18 제 3442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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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큐멘터리 작가다. 글로도 쓰고 영상으로도 쓴다. 내 직업을 밝히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 또 묻는다. “오래 살피고 깊이 질문합니다.” 별로 친절하지 못한 답이지만 실상이 그렇다. 질문하는 자, 그것이 나의 업이다. 하여 나는 이름난 의사에게도 묻고, 남부군 마지막 전사에게도 묻고, 대통령에게도 물었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질문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세상의 깊이를 쟀다. 

의학 다큐멘터리 작가로 17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이름난 의사를 찾아온 이들이니 중한 병을 앓는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다시 수술장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들이었다. 생과 사, 그 갈림길에 선 이들이라고 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도 물었다.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살아서 수술장 문을 나온다면, 다시 살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정해진 시간을 사는 유한한 인간이기에 누군가를 통해 인생을 배워야 했다. 그러니 질문은 늘 같았으며 놀랍게도 누구의 대답이든 늘 비슷했다.

“다시 살수 있다면, 몇 년 만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싶어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들의 소망은 살아서 가족들과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여행일까? 느닷없이 유물 유적이 보고 싶다거나 이름난 건축물이나 절경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삶의 벼랑 끝에서 여행을 떠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여행이라는 말 앞에 달린 전제, 사랑하는 이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다.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행은 무엇인가? 나를 일로부터 해방하게 해 주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리하여 나를 나로서 살게 하는 시간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순수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일에 좇기고 버스 시간에 허덕이고 성적이나 성과에 눈치 보지 않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하고 맛있게 먹고 ‘아, 좋다’ 하며 온전한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 진정한 당신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의 최상의 표현이 ‘여행’인 것이다.

그 다음 많은 답은 “사랑한다” 였다.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딸과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쉽다면 쉬운 그 말을 왜 하지 못 했을까? 후회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쉬운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면 그 사랑에 조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네가 어떤 상황이든 너를 무조건 지지하고 추앙하며 환대한다는 것이다.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 이들은 아프게 깨우친다. 아프게 깨우친 이들을 통해 우리는 또 배운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천애고아처럼 떨어진 한 생명, 가장 가깝게 살았던 이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상대가 가진 생명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일로써 또 배움의 방편으로써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답을 들고 나는 세상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나는 오늘 당신에게 묻는다. 유한한 당신의 시간 동안, 무엇을 꼭 하고 싶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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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