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죽음의 열매

이승훈
입력일 2025-04-29 11:14:07 수정일 2025-04-29 11:14:07 발행일 2025-05-04 제 344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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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떨어진 벚꽃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위에서는 보송보송한 느낌과 새하얀 그 색감이 아름다웠다면, 바닥에서는 켜켜이 쌓여 농축된 색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떨어진 그 잎들은 썩어 없어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하늘을 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늘을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땅에 떨어져도 이쁜데, 떨어지기 전에 더 많이 구경할걸 그랬네….’ 벚꽃은 두 번 피는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숭고하게 살아온 이들은 살아생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간다움을 피워내고, 남긴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삶에 흔적을 남겨 또 다른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은 죽음 이후 그의 말과 행적이 재조명되고 그에 대한 향수가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는 영향력을 미칩니다. 정말로 훌륭한 이들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용기와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숭고한 가치를 몸소 실천한 이들은 죽어서도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을 때, 헛된 욕망에서 죽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복음의 기쁨」 마지막에서 이런 기도를 바치십니다. “부활의 새로운 열정을 저희에게 주시어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복음을 모든 이에게 전하게 하시고 새로운 길을 찾는 거룩한 용기를 주시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다다를 수 있게 하소서.”(288항) 교황님은 자신이 했던 수많은 말들에 갇히지 않고 실천으로 그 말들을 세상에 심어주셨습니다. 이 기도문처럼 교황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의 은총을 죽음 이후에도 전해주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남긴 메시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해묵은 논쟁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가난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온몸으로 사랑과 평화, 위로와 치유를 전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그 어떤 지도자, 높은 사람도 보여주지 못한 일치와 평화를 온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나간 자리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분의 행적이 나의 삶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사랑과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에게 복음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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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