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 묵상 통해 하느님 사랑 표현

최용택
입력일 2024-03-18 15:06:56 수정일 2024-03-21 17:36:59 발행일 2024-03-24 제 338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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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테인드글라스협회, ‘침묵의 길을 걷다’ 展
3월 25일~4월 10일 파주 헤이리 더루크 스페이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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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作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도 푸르옵니다’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지금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다.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엔도 슈사큐(바오로, 1923~1996)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가 한 독백이다. 엔도 슈사쿠는 17세기 초 고문과 학살을 자행한 일본 막부의 그리스도교 탄압을 배경으로 박해시대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했다. 그러면서 엔도 슈사큐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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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을 맞아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이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을 읽고 묵상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단법인 한국스테인드글라스협회(회장 박정석 미카엘)은 3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파주 헤이리 더루크 2층 스페이스 L에서 ‘침묵의 길을 걷다’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에는 한국스테인드글라스협회 박정석 회장을 포함해 가톨릭신자 작가 9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지난해 3월 엔도 슈사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엔도 슈사쿠 문학관을 시작으로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된 나사사키 지역을 순례했다. 오우라성당과 기리시단이 처형됐던 니시자카공원, 히라도 등 소설 속 장소를 찾아 ‘하느님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던 소설 「침묵」을 묵상했다. 이 묵상을 통해 작가들은 스테인드글라스와 공예,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작가들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의 선구자 고(故) 이남규 작가(루카, 1931~1993)와 엔도 슈사쿠와의 공통점에 주목했다. 이남규 작가와 엔도 슈사쿠는 작품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려 했다. 두 작가는 평생을 투병생활을 하며 작업을 했으며,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살았지만 이들의 작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생명을 전하고 있다. 고독했던 소년기와 마지막 작품의 결실을 확인하고 의식불명이 되어 선종한 것, 유쾌한 성격, 프랑스 유학, 가톨릭 신앙의 토착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 등이 이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박정석 회장은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 이남규 선생님을 사랑하는 9명의 작가들이 가톨릭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만나 두 작가를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낸 삶과 신앙을 묵상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 종교와 문학, 미술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