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판ㆍ검사 나리들의 나이가 너무 어려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다른 직업은 몰라도 사람을 다루는 직업만은 어느 정도 인생 경륜을 필요로 한다. 우리 신부 역시 예외 일수는 없다고 본다.
대전 공군 교육 사령부 군종 신부 시절의 얘기다. 그 당시 나의 나이 만 30세. 아직 새 신부 티를 벗지 못하던 때다. 군 법무과실에서 전회가 왔다. 빨리 좀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웬일일까?』하고 가 보았더니 겁먹은 듯 떨고 있는 방위병 하나와 눈엔 눈물이 잔뜩 고이고 흐트러진 머리를 그대로 늘어뜨린 아가씨 한 분이 애처롭게 앉아 있었다. 내용인 즉 그 여인이 10여 년 전부터 그 방위병을 뒷바라지 한 덕택에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 이제 모 대학의 강사로 취업 했건만 이제 와서 그 여인을 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분개한 그 애인은 그 방위병을「혼인을 빙자한 간통죄」로 고발하였는데 그런 방법보다는 적당한 금액의 위자료로 해결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느냐고 아무리 설득해도 막무가내니 신부님이 그 중재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다. 그 여인은 천주교 신자였다. 나 역시 애정 없는 결혼을 하느니 그편이 나으리라 생각되어 그렇게 하도록 권해 보았다. 의외로 쉽게 승낙하여 상당한 액수로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오랜 싸움이 끝나고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는 날 그 여인은 이렇게 절규 했다.
『신부님 이제 전 누굴 기다리며 살아야 돼요? 그간엔 그래도 언젠가는 저 남자가 나에게 돌아오겠지…하는 꿈을 먹고 그 숱한 모욕과 멸시와 핍박을 이겨 냈는데 이제 난 무엇을 기다리며 산단 말입니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사제인 내가 할일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주는 일이었다. 몇 푼의 위자료를 더 받게 해주는 일 보다는 그 고통과 시련이 하느님을 만나는 고통이도록 그녀의 상처 난 영혼을 회유해주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리하여 비록 헤어지더라도 사랑하기에 사랑으로 헤어질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늦게나마 기도한다.
『주님 그 때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때 그 고통이 삶을 포기하는 고통이 아니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히려 그녀의 그 고통이 우리 인간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고 믿고 살아야 할 그런 존재임을 깨닫는 은총의 시련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어떻든 너무도 어린 사제였기에 저지른 과오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