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시사조명] 베를린장벽 무너지기까지

박해원 기자
입력일 2020-12-22 15:24:25 수정일 2020-12-22 15:24:25 발행일 1989-11-19 제 168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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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동질 회복에 교회 앞장서
동독인의 민주화 요구도 한 몫
남북은 동질ㆍ일치적 연대감시급
정부ㆍ교회의 진취적자세 필요
지난 주말 세계인의 모든 감격은 동서냉전의 상징으로 굳건히 버텨온 베를린장벽의 붕괴 소식에 쏟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특히 이 감격스런 사태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국민들의 가슴에 뭉클한 어떤 희망감을 안겨준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의 답답한 분단현실을 감당키 어려운、뼈를 에는 듯한 서글픈 애환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9일 국내 각 언론사들의 폭발적인 보도에 따라 신문을 펼쳐들고 이 소식을 열심히 읽고 있던 초로의 어떤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아마도 그는 북한에 자신의 부모ㆍ형제들을 남겨두고 월남、자나 깨나 한시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있는 이산가족 중의 한사람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베를린장벽을 포함한 모든 국경을 즉각 전면 개방한다는 동독당국의 전격발표가 나온지 불과 수 시간도 못되어 수 천 명의 동독인이 합법적인 서독행을 위해 베를린장벽으로 몰려들었으며 、동베를린에서 줄지어 넘어오는 동포들을 서베를린 시민들은 얼싸안고 감격의 환희와 축배를 들었다。또한 어떤 이들은 61년 이후 베를린장벽과 기타 국경을 탈출을 시도하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2백여 명의 영혼들을 위해 위령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조금 성급한 기대인지도 모르지만 이 감격적인 사실을 지켜보면서 동북아에 가로쳐진 이 땅의 분단선에도 이런 변화가 결국 오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을 저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희망을 성취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자세와 노력으로 통일열망을 가꿔가야 할 것인가?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무엇보다도 게르만 민족이 분단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지켜오면서、참된 평화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데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세계평화와 교회」강연차 내한、「분단국가의 교회」를 주제로 강연한 서독 시파이어 교구 안톤 슐렘바하 주교는『서독의 가톨릭교회는 장벽과 철조망을 넘어 동서독간의 연결과계를 유지하고 기존의 간격을 심화시키지 않기 위해 지성껏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슐렘바하 주교는『서독교회로부터 성당 설비들을 건립하고 자선사업들을 위한 거액의 기부금이 동독으로 이송되고 있다』면서『서신왕래와 서독의 금품전달로 이루어지는 본당들과 교구들 사이의 결연과계가 있고、서독사제들이 동독사제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 했다。

또한 슐렘바하 주교는『서독교회는 전쟁 때의 무서운 경험과 군사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양대 세력 지영의 분계선인 철의 장막에서 계속되어온 전쟁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평화실현에 매우 민감하게 됐다』면서『서독교회는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을 그 소임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슈렘바하 주교가 밝힌 서독교회의 이러한 노력은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시키고 급기야는 베를린장벽을 제거시키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휴전선의 붕괴를 위해서 우리 한국교회가 당장 견지해 나갈 과제들이 현실적으로 독일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하더라도 과거 남북정권 당사자들의 상호비방에 따라 축적되어온 민족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남북동포간의 동질적ㆍ일치적 연대감을 구축해 나가는데 그리스도인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해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한편 근년들어 불기 시작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조치에 편승、공산종권에 애항한 동독 국민들의 자유ㆍ민주화를 요구하는 끊임없는 함성도 베를린장벽을 제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당국이 시대착오적인「김일성 주의」를 던져버리도록、북녘 땅에 자유와 민주화ㆍ인간존엄성을 촉구하는 함성을 진동시키기 위해 정부당국과 한국교회의 보다 진취적·능동적인 자세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왜냐하면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온 겨레에게 남다른 감격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