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김수환 추기경 부활절 메시지 (전문)

입력일 2020-05-10 15:57:56 수정일 2020-05-10 15:57:56 발행일 1989-03-26 제 1648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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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불신에 대한 믿음의 승리요、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이며、무엇보다도 미움과 죄에 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즉 우리 인간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승리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20、21)하며 당신평화를 주셨습니다.

왜 평화입니까?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와 죽음을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증오하고 핍박하는 원수에게 생명을 온전히 내놓으셨다가 되찾으신 그분 앞에서 이제는 어떠한 미움과 분열도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전리품이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당신의 이 평화로써 사도들을 완전히 새롭게 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여 새 인류공동체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고 새 역사가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변모된 사도들의 삶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부활전、사도들은 주님을 따르기는 하였으나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였고 주님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중 대표격인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 수난전날 만찬 때 왜 자기 발을 씻으셔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였고(요한13 6~7)、한없이 슬픈 그 석별의 시간에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지를 두고 다투기까지 하였습니다. (루까22、24).

주님과 같이 함께 죽겠다고 장담한 그들이었건만 주님의 그 수난의 시간에는 모두가 도망쳐버렸고、심지어 베드로는 하늘을 두고 맹세하며 스승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배반하였습니다. (마태26、27)、그 시간은 복음에서『때는 밤이었다』(요한13、20)고 말한 그대로 어둠이 그들을 지배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부활전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고、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까지 하였으나、그들은 여전히 약한 인간 그대로였고 그들은 자기를 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후의 사도들은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얼을 받은 그들은 묵은 인간을 벗고 그리스도라는 새 인간을 입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주님과 함께 제자들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리의 인간、정의의 인간이 되었고 사랑의 실천으로 평화를 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누가 높은지 다투지 않을 뿐 아니라、주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면서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도2장끝、4장끝).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때까지는 서로 원수같이 지내던 유다인과 이방인들이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계급의 차별없이 모두가 명실공히 그리스도 안에 사랑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무덤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하느님과 인간사이、인간과인간사이의 단절의 모든 벽을 동시에 무너뜨렸습니다. 여기서 새 인류의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2、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의 평화를 무상으로 얻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죄를 당신이 대신 지시고、당신 자신을 세상의 죄를 없이하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깨끗이 바치셨습니다.

이사야는 일찌기 이를 예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였고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병을 고쳐주었구나』(53、4)

유다인과 이방인이 원수되었던 담을 헐어버리고 화해의 만남을 이루게 된 것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 그들 모두가 퍼부었던 미움과 핍박을 그분은 묵묵히 받아내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써 사도 바오로는『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에페2、14)라고 외쳤습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당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높이 달림으로써 당신 안에 모든 이를 하나로 모으신 것입니다(요한12、32).

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요 도구이다』(교회헌장1)라고 교회헌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이 세상의 모든 분열과 분단을 타파하고、원수되고 갈라진 모든 이를 화해시켜 하나로 모으고 평화를 이룩하게 하는 사명을 본질적으로 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한국사회 속에서 바로 그러한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남북이 분단된 상황속에 핵분열을 일으키듯이 정파간、지역간、계층간、세대간、노사간의 대립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이 혼미와 혼란 속에 교회는 분명히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그분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모든 이의 가슴속에 심어야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습니까? 우리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나 지역간、계층간의 화합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리스도로써 맺어진 유대가 혈연이나 지연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습니까? 혈연ㆍ지연은 세상의 것이요、따라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써 맺어진 유대는 영생의 끈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쳐야합니다.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은 지역、계층、세대、남녀의 차별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되어야하고、이 믿음과 사랑의 일치를 있는 힘을 다하여 세상에 외쳐야합니다

이제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엠마우스로 가던 두 제자、그리고 사도들과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 안에도 사도들에서와 같이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요、그것은 곧 믿는다는 것입니다. 보고서야 믿겠다고 한 토마가『나의 주님、나의 하느님』 (요한20、28)한 것도 육신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기때문이 아니라、그 순간 마음의 눈이 열려 주님을 보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하고 그분을 통해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폐쇄적이요、이기적인 자아 즉 묵은 인간이 내 안에서 죽고、그리스도를 닮은 새 인간이 내 안에서 부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신 것처럼、우리도 사랑으로 지역과 계층、또는 세대 간의 불신과 불화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5) 이 사랑을 우리는 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말씀과 삶으로써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은『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과 함께、사랑만이 인간완성과 세계개혁의 근본 법칙이라는 것입니다(사목헌장 37항 참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떠나서 참사람이 될 수 없고、사랑을 떠나서 참된 인간사회도、세상도 건설할 수 없습니다. 이제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화해와 이땅의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사랑의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세계 성체대회를 앞두고 성체성년으로 이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진실로 성체성사에서 우리의「밥」이 되기까지 하신 그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자신과 우리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주고、나누는 사랑을 살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이 사회 속에서 분명히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의 등불이 되어야합니다. 빠스카의 촛불과 같이 사랑으로 자신을 태움으로 오늘의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할 소명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명을 다할 때 부활하신 주님은 그 옛날 당신의 강한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 내셨듯이 그렇게 우리사회와 우리민족을 오늘의 이 어둠에서 빛과 생명、자유와 평화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기쁨이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다시금 빕니다.

1989년 부활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