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오후 4시 남서울병원 한 병실에서 연진이는 아홉 번째 생일축하를 받고 있었다.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연진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초롱초롱한 눈매, 꼭 다문 입술이 제법 의젓하게 보이는 연진이는 눈물을 감추면서 부르는 꼬마 친구들의 생일축하 노래에 모처럼 활짝 웃었다. 친구와 친지들의 생일선물을 풀어볼 때마다 어린 아이다운 기쁨을 나다내면서도 연진이는 엄마ㆍ아빠가 아직도 아파서 함께 생일케이크 촛불을 끄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누가ㆍ언제ㆍ어떻게 이 꼬마에게 부모를 잃은 엄청난 슬픔을 전해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9월 14일 아시아 경기대회 직전 김포공항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으로 졸지에 부모를 잃은 김연진양(아가타ㆍ9살ㆍ신천국교2년). 아직도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부려도 한참을 부릴 나이에 연진이는 표현하기조차 힘든 상처를 입게 됐다. 옥(玉)씨 일가로 묶여져있는 희생자 뒤에 가려져있는 연진이는 사실 가장 처절한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일가 14명 중 4명이 목숨을 잃고 10명이 중ㆍ경상을 입은 이 사건으로 연진이는 아빠 김복덕씨(42ㆍ가브리엘ㆍ전(前)남서울병원 마취과장) 엄마 오금숙씨(33ㆍ메네딕따)를 한꺼번에 잃어 가정을 송두리째 빼앗긴 셈이기 때문이다.
사고당시 위에 여러 개의 파편이 박히고 종아리 근육과 심줄이 절단,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겨야 했던 연진이에게 부모의 죽음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고 연진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아픔보다 부모의 아픔을 염려, 주위를 울려왔다.
아빠가 생전에 근무하던 남서울병원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위기를 벗어난 연진이는 엄마 아빠가 많이 아파서 만날 수 없다는 설명에 순종, 한 번도 떼를 쓰지 않았고 자신의 아홉 번째 생일날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도 빠짐없이『엄마, 아빠를 빨리 낫게 해 달라』고 성모님께 기도하는 연진이는 위 수술로 인한 금식, 췌장염 등 엄청난 아픔도 엄마 아빠의 아픔을 생각하며 참아내 의료진을 놀라게 했다.
이제 다리에 고정시킨 기브스를 풀면 연진이는 퇴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퇴원 후 연진이는 큰아버지(김병학 신부ㆍ서울 역촌동본당주님)가 성직자이기 때문에 부산에 있는 조부모 김연희씨(77세), 김기옥씨(64세)가 맡아 기르도록 되어있지만 졸지에 부모를 잃은 연진이는 아직도 장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 하고 있다.
MㆍE부부로 신앙과 생활면에서 부러울 만큼 모범을 보인 이 가정의 가장 김봉덕씨는 남서울병원의 실력 있는 마취과장으로 미래는 탄탄하게 보장된 것이었다. 생전에 그가 받던 봉급은 월 3백만원을 훨씬 윗 돌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연진이가 받아야할 보상금은 줄잡아 4억여 원 정도(호프만식 계산법).
김포공항 폭발사건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아시안게임을 방해하기위한 국제 테러사건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연진이의 장래는 바로 국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연진이의 부모와 또 다른 이들의 희생으로 허술했던 경비태세는 강화될 수 있었고 결국 아시안 게임은 무사히 치를 수가 있었음은 너무나 자명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죄도 없이 가정을 빼앗긴 연진이의 미래를 지켜줄 보상 문제는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연진이 큰 아빠니까 연진이는 내 큰딸이지?』모든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바로 그 때를 위해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해보는 큰 아버지 김병학 신부에게 매번『아니 조카야』라고 분명하게 받아 넘기는 김연진양. 동생부부의 비극을 지켜보며 안으로만 슬픔을 삼켜온 김 신부는『어떻게 이 어린 꼬마의 가슴에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