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이 드러날 때 덕(德)이 되는 것이요, 잘못한 것을 감추기만 하면 그것이 드러날 때 이미 역천(逆天)이 되어 하늘의 용서만을 간구하게 마련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서른셋의 짧은 나이로 영생(永生)을 가르치셨으니 그 뜻을 신분 모름은 속 인된 탓이라 하겠거니와 그 뜻의 삼사 분도 깨닫지 않으려함은 스스로 묘혈(墓穴)을 사랑하여 짧은 삶 그것만으로 끝나고자 함이다.
오동잎에 의지한 매미의 울음이 아직 요란한 바 있으나 그 울음을 어제의 울음과는 사뭇 달라 이미 수삽한 가을의 심회를 담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이른 귀뚜라미가 처연한 날갯소리를 냄도 이승의 덧없음을 꾸짖는 해마다의 교시(敎示)인 것이다. 그러나 우는 것이 어찌 오동잎 그늘에 붙은 매미뿐일 것이며 뜨락의 여기저기 실솔 몇 마리뿐이랴. 옛 부터 백성은 아픔을 견디지 못할 때 울었고 원통함에 또한 울었고 자식이 방탕함에 슬피 울었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말 대신 운 바가 있었다.
일찌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모두에게 두루두루 보잘바 없는 힘을 주었거니와 이제 그 힘을 저울에 달아 내 힘이 더 세다, 네 힘이 더 약하다하여 힘의 고하(高下)를 정하고 모두다 하늘의 종으로 태어났음에도「나는 너의 주인이다 하여」수만 수십만의 사람을 종으로 삼으려 함은 천주께 대역하는「당랑거철」의 어리석은 짓이다.
분수를 모르고 힘의 삶에 집착하면 우리들 생년(生年)이란 하품 한 번에 끝나는 덧없음이 될 것이요 분수를 알아 사랑하고 도(道)를 좇으면 우리들 예수인생은 영생을 준비하는 보람의 하루하루일 것이다.
「네 것이다, 내 것이다」가 아니라「우리 모두의 것」이요, 주인이다 종이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늘의 종인 것이다.
무엇을 먹거나 쌀 때, 오물거리고 열고 담음은 입과 항문이 다를 바 없고 닦지 않을 때 구린내 나기는 위아래가 한 가지이지만, 입이란「진실한 말」을 뱉는 구실로 하여「위에 자리한 구멍」이 된 것이니 억지로 입을 틀어막음이 어찌 또한 큰 죄가 아니랴.
아아, 이런 일 저런 일 있기도 많이 있었고 잊기도 많이 잊었다.
계집과 사내가 모두 함께 수심을 머금는 천 년 전의 그 가을이 또 오는데, 이 가을엔 또 무슨 일이 있으려는지 하회를 두고 볼 일이다. 정(政)은 정야(正也)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