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수도회 역사 - 백년의 의미] <3>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활동

이련숙 기자
입력일 2019-09-23 14:04:38 수정일 2019-09-23 14:04:38 발행일 1988-09-18 제 1622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1894년 국내 첫 보육원 설립

1세기 동안 고아 1만명 길러
장애자 종합복지관 설립 추진
병원ㆍ사회사업ㆍ특수사도직 등 활동분야 다양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진출 1백년 역사와 거의 맥을 함께해 오면서 한국보육원의 선구자로서, 교회사회복지시설의 선두주자로서 달려온 인천 해성보육원(원장ㆍ방마리아 수녀).

근 1세기동안 1만명이 넘는 고아를 길러낸 해성보육원은 이 땅에 버림받은 고아를 돌보며 복음을 전파하기위해 진출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시대의 징표에 동참하고 그 요구에 민감하게 응답해온 사도적 활동의 으뜸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을 때는 3백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북적대던 이 보육원에 지금은 6세미만 1백여명의 어린이가 수녀와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다. 현대적 시설 속에서 아이들 건강관리 정서 안정 등에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특히 입양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생명에게 행복한 가정을 마련해주고 미혼모까지 돌보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은 과거 의식주 해결에 만 급급하던 시절과는 판이하다.

이 보육원을 시작으로 활동에 뛰어들었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1백년을 맞은 현재 서울과 대구 양관구에서 7백 70여명의 수녀들이 9개 학교ㆍ41개 유치원ㆍ1백 13개 본당ㆍ7개 병원ㆍ17군데의 사회사업 및 특수 사도직 분야에서 활동 중으로 활동분야가 다양해졌다.

해성보육원은 이 나라 개화초기인 1894년 8월 동학란과 청일전쟁ㆍ갑오경장이 잇달아 일어나던 어두운 시기에 수녀들이 제물포 거리에서 버려진 불구의 고아들을 거두어 보살피면서 시작됐다.

서울에 최초의 고아원을 건립한 뒤 인천 제물포에 분원을 세운 수녀회는 시약소와 고아원을 운영함으로써 자선활동과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마구 버려진 생명을 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심어 나갔다.

일제 양곡 수탈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이를 이겨가며 수녀들은 이 땅의 고아들을 돌보았다.

특히 이 시절, 해성보육원이 극심한 생활고를 이겨나가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는 당시 답동본당 주임이던 전학준 신부.

1900~1947년까지 장기간 답동본당에서 사목하던 전 신부는 수녀들의 영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현재의 해성보육원이 위치해 있는 이 일대 2만여평의 논밭을 매입, 농사를 지어 고아들이 먹고 사는데 별걱정이 없도록 자활의 기틀을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수녀들은 아이들의 의식주 해결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한글과 기술교육도 함께 가르쳤다

해방이후 6ㆍ25전쟁의 와중 속에서 수녀들은 수많은 고아들과 함께 대구ㆍ부산 등지로 피난까지 하면서 봉사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 후 늘어나는 전쟁고아로 해성보육원 수용인원은 3백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혼혈아까지 생겨남에 따라 수녀들은 혼혈아를 위한 시설을 별도로 마련, 이들을 양육해 해외입양 등으로 가정을 마련해 주곤 했다.

개화기의 어두운 시기ㆍ일제시대와 6ㆍ25등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른 해성보육원은 그동안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요청에 따른 변화의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다

84년, 출산을 앞두고 있으면서 따뜻하게 보살펴줄 사람이 없는 가난한 임산부와 방황하는 미혼모를 위해 해성보육원 내에 조산원을 설치, 운영하게 된 것도 그 한 예로 볼 수 있다.

또 자녀 적게 낳기 운동의 영향으로 해성보육원의 어린이 숫자도 점차 줄어 현재는 1백여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 중 지체부자유아 뇌성미비아등 장애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신생아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장애자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노인ㆍ청소년ㆍ도시빈민 등의 문제와 함께 특별한관심이 요청되고 있는 분야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해성보육원은 장애자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현재 인천시와 장애자 종합복지관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해성보육원의 변화 움직임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시대적요청과 수녀회의 고유 카리스마에 따라 사업의 방향전환을 시도하는 것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지금까지의 본당 중심 사도직에서 벗어나 차츰 사회사업 및 특수 사도직분야로 전환, 봉사의 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 봄 서울 동부시립상담소의 운영을 맡아 문을 열게 된 것도 오늘날 심각해져 가고 있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시대적 요청에 더욱 적절히 대처하려는 수녀회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시대가 요청하는 사도직개발에 나서는 것은 또한 한국 수도회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다.

한국진출 1백주년을 맞으며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내적쇄신에 주력해 오면서 자체반성을 거듭해온 수녀회는 이를 토대로 수녀회의 고유영성을 좀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결국 수도회가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식별, 그 요구에 민감하게 응할 때 교회와 사회에 풍성한 꽃을 피워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