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은 저에게 맞는 옷
강의가 끝난 뒤에는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그는 음식을 남기지는 않되, 절대 과식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교회나 살이 찌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프라도회 사명에 따라 살아 가고 있는 그는 한결같이 ‘가난’을 사제 생활의 모토로 삼아 왔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가난은 저에게 맞는 옷”이라면서 “사이즈가 큰 옷을 입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프라도회는 교황청 설립 재속 사제회로,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프랑스 리옹에서 설립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믿음 아래 ‘구유’에 계시는 그분처럼 가난하고 ‘십자가’에 달린 그분처럼 못 박히며 ‘감실’에 계신 그분처럼 먹히는 사제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국내 프라도회 사제는 170명 정도다.
실제로 그의 삶은 오롯이 가난한 길이었다. 2000년 12월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 신부는 2004년 의정부교구가 분가할 때 의정부교구를 선택했다. 3년 전에는 교구에서도 교적상 신자수 320여 명으로 작은 본당인 이곳 송추본당에 자원했다. 작고 가난한 곳에서 할 일이 더욱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그는 해마다 통장정리를 하며 남은 돈을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도 한다.
박미덕(레베카)씨는 “처음 본당에 오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어렵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서 복음에 가까운 삶을 사신다”면서 “신부님의 호탕한 웃음은 삶의 긴장감마저 풀어헤친다”고 밝혔다.
점심을 먹고 사제관 1층에 위치한 ‘설렘 다방’으로 이동했다. 그는 사제관 1층을 누구나 부담 없이 쉬다 갈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설렘 다방’도 그 일환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그의 열정적인 강의는 2시간 넘게 계속됐다. 심지어 3시로 예정돼 있던 파견미사는 4시가 다 돼서야 시작했다.
■ 바보같은 사랑
피정이 모두 끝난 뒤 떠나는 신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웅을 마친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6시 미사를 준비한다.
하루를 온전히 신자들을 위해 바친 그는 자신보다 피정을 도와 준 본당 베로니카회 봉사자들을 먼저 생각하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베로니카회가 없었으면 피정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70대 봉사자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런 그의 사랑은 이미 본당 신자들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미사가 끝난 뒤 만난 전 사목회장 신동수(다미아노)씨는 “신부님 눈에는 사랑밖에 안 보인다”며 “신자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알아봐 주고 각각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신다”고 밝혔다. 이어 “신부님이 오신 뒤 본당 공동체가 훨씬 화목해졌다”고도 했다.
김 신부는 “좋아하는 사람은 늘 생각나는 것처럼 사랑하면 그만큼 관심이 간다”면서 “사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먼저 낮아지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김 신부에게 사제 성화가 무엇인지 묻자 고민 없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제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메꾸고 기도하며 거룩한 마음으로 지내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음날인 주일 일정도 미사와 피정 등으로 빡빡한 김 신부는 “동네 뒷산 같은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받아 줄 수 있는 그런 사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