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구산성지개발 어려움 겪어

입력일 2019-05-29 11:50:09 수정일 2025-06-24 14:15:50 발행일 1991-09-01 제 176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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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등 계획만 수립 

성 김성우 일가 묻힌 유서깊은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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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부터 개발에 착수한 구산성지내 김성우 성인의 묘와 순교 현양비.

김성우(안또니오) 성인이 태어나고 묻혀있는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구산성지가 신자들의 인식부족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산성지는 김성우 성인이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1925년 7월 25일 시복된후 치명당시 성인의 시신을 친척들이 본 고향인 경기도 광주 구산의 친산에 비밀리 매장했다는 후손들의 증언과 역사적 사실을 상고, 재검토를 거쳐 1927년 5월 30일 성인의 묘지가 발굴된 뒤 세인의 이목을 끌기 시작해 1978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구산성지에는 1841년 옥중교살로 순교한 김성우 성인을 비롯 그의 동생 만집ㆍ문집과 그의 아들 성희 등 성인의 일가 아홉 분의 치명자가 모셔져 있는 유서깊은 성지이다.

구산성지는 구산본당이 수원교구 신장본당 관할 공소시절 성지개발에 뜻있는 후손과 몇사람의 신자들이 농토를 기증, 2천1백여평의 현재 성지부지를 매입함으로서 터를 잡았다. 그후 구산본당은 1979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안내판을 설치하고 성지를 단장하는 한편 기념성당과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을 수립했다.

마을 주민 중 99%가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구산본당은 순교자의 후손답게 김은식 신부(1958년 서품) 박성규 신부(1967년 서품) 박건순 신부(1969년 서품) 김학렬 신부(1976년 서품) 김학무 신부(1983년 서품) 등이 사제로서 순교자들의 얼을 이어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유서깊은 성지가 최근 신자들의 인식부족으로 개발을 한다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구산본당은 본당 사목회 산하에 성지분과위워회(위원장ㆍ김학인)를 구성, 성인의 묘역과 순교현양비가 마련돼 있는 성지를 가꾸는 등 성지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일반 신자들의 성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이다.

구산본당은 또 순례자들이 성지를 돌아보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기념성당터에 임시로 천막을 설치,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왕조 정조 19년 을묘년 경주 김씨 김영춘의 맏아들로 구산에서 출생한 김성우 성인은 온화하고 관후하여 신자는 물론 외교인에게까지 흠모를 받았다.

성 김성우와 그의 형제들은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입교, 얼마 되지 않아 이 작은 마을은 온통 열렬한 교우촌이 됐다.

그후 김성우 성인은 유다의 밀고로「사학의 괴수」라는 죄명으로 한양포도청에 압송되어 1841년 순교전까지 비밀리에 최초로 입국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첫 선교사제 모방 나신부(1839년 9월 2일 치명)를 자기집에 모신 다음 항상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공소를 꾸며놓고 한글과 풍습등 을 가르쳐 드리면서 전심전력 전교활동을 도왔다.

※연락처: 수원교구 구산성당(0347)792-4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