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엑스포가 폐막 일주일을 앞두고 있다. 과학엑스포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이번 대전엑스포는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1천만명 관람목표를 일찌감치 초과달성한 것은 물론 폐막을 앞둔 현재 그 목표량이 훨씬 넘어섰다는 발표가 나왔다. 사람 모은 것으로 평가를 한다면 일단 대전엑스포는 성공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입장료 수입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확실한 성공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좁은 땅덩어리라 휴일이면 마땅하게 갈 곳이 없어 헤매던 엄청난 인파를 흡수했다는 점도 단연 엑스포의 유익함 속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도 훌륭한 현장교육의 장소로 말이다. 실제로 지난 1백여일 동안 우리 민족은 엑스포를 향해 민족의 대이동을 단행했었다.
엑스포장에서는 참으로 따뜻한 장면들이 쉽게 목격되기도 했다. 음식이 든 배낭을 씩씩하게 둘러맨 아버지, 막내의 조막손을 꼬옥 잡은 어머니, 멋진 폼으로 카메라를 눌러대는 중학생 장남 등등 가족동반 엑스포 나들이의 그림들은 거의 비슷비슷한 풍경을 연출했다. 아마도 이번 엑스포는 가족이 함께 공부하며 가족 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는 기회제공의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야 할지 모른다.
지역사회 공동체가 함께 나들이를 한 것도 이번 엑스포의 특징이었다. 이른바 ‘모자부대’로 통하는 어른들의 단체입장은 참가인원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이분들은 서로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소재를 파악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달려와 길바닥에 앉은 채 마련해온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곧바로 행사장을 돌아야 하는 일정자체가 이분들에겐 무리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간이 있는 곳이면, 그늘이 있는 곳이면 장소를 마다않고 코를 고는 모습들도 엑스포를 다녀간 분들이면 누구나 이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엑스포는 한 나라가 자신을 세계적으로 소개하는 국제행사다. 과학엑스포이긴 하지만 우리의 엑스포는 종합엑스포를 지향했고 그 정신으로 모든 행사가 준비, 진행됐다. 따라서 대전엑스포는 우리나라를 세계만방에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우리의 기술과 세계의 기술을 한자리에서 견주어 보는 다시없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목적과 지향대로 이번 대전엑스포는 성공적 일면이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성공적 일면들은 폐막과 더불어 여러 평가작업을 통해 반드시 조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평가작업과는 별도로 이번 엑스포가 떨군 단순하고도 평이한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아쉬움은 국제관중의 하나인 ‘러시아관’을 비롯, 몇 개의 국제관에 나붙어 있는 경고 아닌 안내문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행동을 보고 따라합니다” “음식물 반입을 절대 금지합니다”
음식물 반입금지(팝콘이나 콜라), 전시물에 손대지 말 것, 전시관 안에서는 큰소리를 내지 말 것 등등 각 전시관 앞에 반드시 전시되어있는 이용자들에 대한 협조사항과는 별도로 흰 종이에 아무렇게나 써서 전시관 입구에 보란 듯이 내붙인 이 문구들은 우리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어놓고 있다. 주먹만 한 글씨로 삐뚤삐뚤하게 써진 채 전시관 출입문 정면에 나붙은 글씨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만들고 있다.
거친 관람객들의 행동을 제어하다 못해 지쳐버린 도우미들의 고단한 얼굴들, 개관초기 입구에 서서 정중한 인사로 관람객을 맡던 국제관의 외국인 관계자들의 미소도 사라져 버렸고 그나마 다소 거만한 자세로라도 자리를 지키던 그들의 모습이 최근에는 보이지 조차 않는 전시관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여전히 뛰는 아이들과 국제관의 물건들을 사기위해 여전히 밀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이들이 갖고 있던 인내라는 단어는 한계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이번 엑스포는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중요한 기회였다. 상표처럼 붙어다니는 우리 민족의 친절과 예의바름, 그 우수성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앉은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였다고도 할 수가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우리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마당에 그같은 기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를 대표해 파견돼 있던 국제관의 모든 관계자들을 한 사람의 외교사절로 본다면 우리는 그 호기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 같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 기회를 잃은 것 같다.
모처럼 국가가 마음먹고 전개한 대잔치에 찬물을 끼얹는다거나 재를 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 많은 노력과 땀, 정성을 바친 엑스포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마음먹고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4명당 한 명의 국민이 첨단과학기술의 현장을 직접 보았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풍물과 역사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나보았으니 이번 엑스포는 분명 우리 국민들에겐 유익을 주었다. 국제적으로 얻은 바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별도의 안내문이 반드시 필요한 국민들이란 인식도 함께 심어주었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크게 얻어지는 유익함 뒤로 우리가 잃어버린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엑스포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