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 이동호 아빠스가 중국공산화후 한국 고위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5월4일부터 13일까지 9박10일간 연변지역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실로 46년 만에 느껴보는 감회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생가에도 가보고 어릴적 함께 뛰놀던 친구들 친지들도 만나봤어요. 고향인 팔도촌에서는 불과 1시간 남짓 머물렀지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더군요.”
친척방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동호 아빠스의 연변방문은 그곳 조선족 자치주 정부인사들을 만나보고, 이 지역 교회실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것. 그간 대북선교를 위한 교두보로서 연변지역에 대한 한국교회의 지원이 있어왔으나 이번 기회에 이를 확인해보고, 아울러 어느 부분에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정부 당국자들은 의외로 천주교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부 개신교파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불평하는 걸로 봐서 천주교의 일사불란한 조직이나 체계를 그들도 인정하는 눈치였습니다.”
방문기간 동안 줄곧 신부 복장을 하고 다녔어도 의심하거나 제재 받은 적이 없었다는 그는 중국의 종교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더라도 변화된 중국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동호 아빠스는 이번에 북경에서부터 장춘-길림-연길-팔도-왕청-석현-도문에 이르는 연변지역을 두루 방문했다. “9일간의 짧은 일정중에 날씨까지 궂은 데다 교통편마저 불편해 힘든 강행군이었다”는 게 그의 말. 그만큼 보람도 컸고 ‘진작 다녀왔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동호 아빠스는 무엇보다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생활이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목자 없이 기도할만한 장소도 여의치 않은데다 필요한 전례도구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신앙심만은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40~50년 전 한국 농촌을 연상케 하는 연변 신자들의 생활상과 공소실태는 가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곤란할 정도로 피폐된 모습이라고 그는 말한다.
“장춘에서 지하교회 한정도 주교를 만나러 거처로 찾아갔었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더군요. 3평 남짓한 공간에 벽은 흙으로 발라 놓았고 집기라고는 거의 볼 수가 없었어요. 또 도문공소라는 곳도 다 쓰러져 가는 곳간 같은데다 마룻바닥은 부서져 덜렁거리는 게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동호 아빠스는 9일 오전 주일 교중미사를 연길성당에서 집전했다. 한국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중국 정부의 인준 하에 공식미사를 주례하기는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 멀리 흑룡강성 등 타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찾아왔고, 마치 한국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동호 아빠스는 또 북한 신자들이 국경을 넘어와서 몰래 고백성사를 받고 가거나 친척방문을 이용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간다는 사실도 이번 방문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에 대한 이들의 기대는 놀라울 정도로 컸습니다. 당장 기도할 장소는 마땅치 않고 의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좁은 공소라도 기도할 곳을 마련해 주는 일과 신학생 양성을 지원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번 방문이 한국교회의 지원과 관심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확인시켜준 기회가 된 것 같다는 이동호 아빠스는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