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팔순 맞은 이종상 화백… 랑우회 제자들 ‘한국화의 자생성 동음과 이음展’ 열어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01-09 18:31:36 수정일 2018-01-09 20:39:07 발행일 2018-01-14 제 3078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작품에 앞서 ‘인성’ 강조한 한국화 거장 “주님께서 이끄신 삶… 그저 따랐을 뿐”
 민족문화 자생성 강조한 작가, 오천원·오만원권 초상화도 그려
 딸 가슴에 묻으며 주님 현존 체험 “하느님 일에 봉사하며 살 것”

이종상 화백은 “신앙과 예술 모두 마음의 눈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한국화 거장 일랑(一浪) 이종상(요셉) 화백. 그의 팔순을 맞아 제자들이 ‘이종상과 랑우회원 초대전 - 한국화의 자생성 동음(同音)과 이음(異音)전’을 마련했다. 1월 31일까지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이 화백 작품 5점을 비롯해 랑우회원 10명의 작품 6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랑우회’는 지난 40여 년 동안 이 화백의 가르침 아래 작품 활동을 해온 제자들 모임이다. 이들이 선보인 작품에 관해 이 화백은 “작품 소재나 표현 기법들은 모두 다르지만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닮듯 작품들이 묘하게 닮았다”고 평가한다.

이 화백은 평소 제자들에게 각자의 개성과 인성대로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라”고 가르친다. 또한 “직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택하는 것”이라면서 “액자 밖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화백은 현대 한국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한 대표 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한국미술의 원형이 벽화에 있다고 보고 고구려 벽화를 연구했다. 그러면서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한 민족문화의 자생성을 강조해왔다. 아울러 민족의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전통 한국화를 자유분방한 필법으로 그려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63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현 대한민국미술대전) 최연소 추천작가로 데뷔해 제1회 신인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1968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서울대 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5000원 권과 5만 원권에 있는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초상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이 화백은 지난 80여 년을 회상하며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이라면서 “우리는 주님의 뜻에 복종하면 되는 것뿐이다. 살면서 참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이종상 ‘원형상-순명’.

세례를 받은 후 신앙을 중심에 두고 예술 세계를 이어온 그는 주님께 봉헌한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성미술을 선보여 왔다. 지난해 3월에는 충남 신리성지에 국내 처음이자 유일하게 마련된 순교미술관에 순교기록화를 봉헌했다.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성직자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우리나라 전통채색기법인 ‘장지기법’을 활용해 4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다. 서울 혜화동성당과 광주가톨릭대학교 등에도 그의 성미술 작품이 있다.

봉헌금에 얽힌 체험은 이 화백을 성미술의 길로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어느날 서울 혜화동 로터리 주변에서 번데기를 파는 할머니가 봉헌금으로 만 원짜리를 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신자들이 봉헌금으로 평균 500원, 1000원 정도를 낼 때였다. 그는 “할머니를 보며 내 탈렌트를 어떻게 봉헌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30여 년 전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절감한 후엔 스스로 세례도 받았다. 갓 스무 살이 된 둘째 딸이 한 줌의 재로 돌아왔을 때다. 그는 딸의 유골 가루를 꽁꽁 언 강 얼음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뿌렸다. 집으로 돌아가다 다시 유골을 뿌린 곳을 돌아봤는데, 갑자기 얼음구멍 주위로 붉은빛 안개가 피어오르며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뻗어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

원래 그는 하느님, 성령 등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체험 이후 “주님이 계신 것은 너무너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당시에 둘째 딸이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확신도 얻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신앙은 단순히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님께 받은 축복에 감사하며 주님 하시는 일에 따라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화폐 초상화가답게 돈에 대한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돈은 뒤에서 따라가니 절대로 돈을 탐하지 마세요. 앞에서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