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은 후 신앙을 중심에 두고 예술 세계를 이어온 그는 주님께 봉헌한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성미술을 선보여 왔다. 지난해 3월에는 충남 신리성지에 국내 처음이자 유일하게 마련된 순교미술관에 순교기록화를 봉헌했다.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성직자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우리나라 전통채색기법인 ‘장지기법’을 활용해 4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다. 서울 혜화동성당과 광주가톨릭대학교 등에도 그의 성미술 작품이 있다.
봉헌금에 얽힌 체험은 이 화백을 성미술의 길로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어느날 서울 혜화동 로터리 주변에서 번데기를 파는 할머니가 봉헌금으로 만 원짜리를 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신자들이 봉헌금으로 평균 500원, 1000원 정도를 낼 때였다. 그는 “할머니를 보며 내 탈렌트를 어떻게 봉헌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30여 년 전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절감한 후엔 스스로 세례도 받았다. 갓 스무 살이 된 둘째 딸이 한 줌의 재로 돌아왔을 때다. 그는 딸의 유골 가루를 꽁꽁 언 강 얼음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뿌렸다. 집으로 돌아가다 다시 유골을 뿌린 곳을 돌아봤는데, 갑자기 얼음구멍 주위로 붉은빛 안개가 피어오르며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뻗어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
원래 그는 하느님, 성령 등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체험 이후 “주님이 계신 것은 너무너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당시에 둘째 딸이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확신도 얻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신앙은 단순히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님께 받은 축복에 감사하며 주님 하시는 일에 따라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화폐 초상화가답게 돈에 대한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돈은 뒤에서 따라가니 절대로 돈을 탐하지 마세요. 앞에서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