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린아이때부터 다섯손가락으로 수를 세기 시작한다. 숫자들은 일생동안 사람을 동반하고 있다. 시간 무게 거리와 그외 더 많은 것들을 숫자로서 재고 또 기록한다.
그런데 인류의 모든 성전(聖典)들과 또한 성경과 그외 많은 신화들과 동화들 그리고 일상생활 자체생활 자체속에서 발견되는 숫자들과 그 상징들의 숨겨진 언어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는 영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이다.
■ 문화와 종교를 통해서 기나긴 길을 걷다
저 유명한 희랍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숫자가 어떤 사물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이해했었다. 그는 음악과 또 우주안에서도 숫자의 법칙을 발견한바 있다.
희랍인들과 베소포타미아의 다른 문화민족들이 여겼던 숫자의 신비설(Mystik) 유태인의 숫자신비설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가운데 많은 것이 구약과 신약성경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중 가장 독특하게 영향을 미친것이 요한묵시록이다.
중세기 대성전 건축가들도 이 숫자의 신비스런 뜻을 알고 있었고 문일들ㆍ학자들ㆍ알브레흐뒤러같은 화가나 요한 세바스티안 비하같은 음악가도 숫자의 뜻을 그들 작품속에 구성해 넣었다.
「숫자없이 정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신학자이며 철학자 자연과학자인 브릭슨의 주교 니콜라오 폰 구에(+1464)도 말하고 있다.
하나의 수는 옛부터 한분이신, 나눌수 없는 하느님을 위해서 사용했고 둘의 수는 인간과 관계가 있었으며 즉 남과 여、삶과 죽음、선ㆍ악과 관계가 있었다.
■ 하느님은 세배로 거룩하신 분이시다
숫자 하나와 같이 셋도 하느님을 위해 상용됐다. 이 셋은 성경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전 문명발상지 고대 종교들 안에서도 성스런 숫자였다.
아마 하느님의 삼위(三位)시초에는 땅과 하늘 그리고 지옥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은 인간이 세번씩이나 경험하는 세상에서부터 3번씩이나 거룩한 분이다.
창조의 천사들은 그분에게「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하고 노래했고 교회 미사전례도 세번씩 거룩하시다를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양한다. 신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3위를 이룸으로 세례를 받는다.
셋의 숫자는 성경에 계속 나타나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씩이나 배반하자 닭이 세번 울었다. 예수는 나중에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 물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예수는 사흘동안 바위무덤에 묻혀 있었다. 로만식의 성당과 고딕대성전들도 세개의 본당으로 지어졌다. 교회력도 대축일이 셋이다. 즉 성탄, 부활 그리고 성신강림이다.
■ 7의 수는 거룩하다
일곱숫자의 신비로운 뜻은 세의 수와 비슷하게 결국 자연의 관찰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고대의 탐구가들은 이미 다섯개의 흑성을 알고 있었다.
여개에 해와 달을 합하면 7이란 수가 된다. 이 숫자는 완전함을 상징하고「처녀」의 숫자로도 인정되었었다. 왜냐하면 7은 다른 수들이 곱해져서 생긴것도 아니고 또 다른수와 곱하면 10이하의 수가 나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휴식을 위하셨다 한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7개의 세계적 기적을 알고 있었다. 솔로몬왕의 신전은 7계단으로 되어있고 성전의 촛대도 7가지로 되어 있으며 거문고 현도 7개였다. 야훼에 의하면 성신의 일곱가지 은혜이며 교회는 또 7성자를 갖고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왕이 꿈에 본 7마리 여윈 암소와 7마리 살찐 암소들은 년수를 (미리) 예엄한 것이며 가난과 풍요함의 상징이었다. 종교적 민중신앙(마리아의 7가지 고통들) 과 동화이야기 그리고 일상 생활안에서도 거룩한 수 7의 흔적이 보인다. -일곱보증인、일곱 양떼지기、일고산맥、일곱생물.
독일말중 평소에 사용되는『이제 너의 7가지 물건들(소지품 일체) 을 모두 챙겼느냐?』하는 물음도 옛날의 의식행위를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교 이전에 성년의식을 거행할때도 7가지 관문을 통과할때 마다 옷을 한가지씩 벗게 한후 그 젊은이를 받아들였었다. 그는 의식이 끝난후 7가지 소지품 (벗은 옷들) 들을 다시 챙겼다 한다.
성스런 숫자 3과 7을 합하면 10이란 숫자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쓰고있는 십진법의 근거가 되고 있을 뿐만아니라 또한 성서적 숫자도 된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10계명을 받았고 야훼는 이집트에 10에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신양성경의 비유에서도 10의 숫자가 여러번 나온다. 10냥의 탈렌트, 등불을 들고 신랑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10명의 신부들, 예수는 해주셨다. 교부들도 이 10의 수를 그리스도교적 완성의 수를 그리스도교적 완성의 수를 그리소도교적 완성의 수라 여겼다.
■ 성서의 수 12
12의 수는 메소포타미아 옛문화에서도 특별한 숫자였다. 바빌론의 성전에도 12개의 대문이 있었고 아테네에서는 12신의 제단이 그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로마법의 근거도 12판 법이었다. 하느님 백성은 야곱의 12명 아들들에서 생겨났고 그래서 12지파라 불렀다. 하느님 백성은 광야을 가로질러 가면서 샘물을 발견했다. 예수는 자기 측근에 12제자들을 선발했었다.
12의 수는 요한묵시록에서도 여러번 나온다. 새 예루살렘은 12대문을 갖고 있고 열두별들의 화관이 해와 같이 옷을 입은 여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열두원로들은 하느님왕좌 양편에 남아있고 1만2천명의 열두배 (144, 000名) 가 하느님의 종들이 되었다. 밤하늘에는 12갱의 동물별자리가 있으며 우리 달력에는 12개의 달이 있다. 「12」, 이는 시간의 목적지이다. 「사람아 영원을 생각하라」고 옛날 기도서에도 적혀있다.
■ 40-속죄의 숫자
성경은 계속해서 40이란 수를 얘기한다. 이 수는 거의 대부분 속죄、보속、절제、기도와 관계가 있다.
노아의 홍수때는 40일 낮과 밤동안 비가 내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동안이나 방황한 끝에 약속된 땅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세는 40일 낮과 밤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시나이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스도도 단식을 위해 40일간 광야에 머물렀고 우리들의 사순절도 40일간 지속된다. 예수는 부활하신후 40일동안 당신 제자들 겥에 머물러 있었다.
이 40일의 숫자안에는 4의 숫자가 들어 있는데 이는 많은 종교들안에서 이 세상과 땅의 상징적 숫자가 되어있다. 희랍사람들은 네가지요소 즉 물과 흙 공기와 불을 알고 있었고 고대에는 4가지방향 (동서남북) 에 맞추어 세계를 4각형으로 생각했다.
교부 예로니모(+419/20) 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해 말할때 이 생각을 도입했다.
『십자가의 형상이 이 세상의 사각모양과 다른점이 무엇이냐?』
그리스도교 이전에 고대 로마는 사가형으로 건설되었었고「roma quadtiertel」(도시+1/4) 은 시내 일부를 뜻하고 있다.
4는「세상의 수」다. 또한 성스런 수이기도 하다. 야훼라는 헤브레아말도 4개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에제키엘의 환시속에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활동을 4명의 케루빔 천사들이 4가지 방향에 따라 세상 4
방향 끝까지 모셔간다. 이 4인수 안에서 하느님과 세상이 서로 만나며 긴장감속의 양극이 만난다. 여기서 수의 신비가 여러가지 형태와 해석으로 나오게 된다. 숫자는 말로, 표현못하는 비밀을 들여다 볼수 있는 창문이다. 이 숫자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애쓴다면 중세의 유명한 시인이요 신비가인 안젤루스 실레시우스의 말처럼 될것이다.
『네가 창조주를 갖고 있으면 모든것이 즉 인간 천사 해와 달 공기 불 땅과 물이 절로 너를 따라 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