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가 뜨거워지다
하라는 ‘화가 나다’는 뜻의 동사인데, 본디 ‘뜨거워지다’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우리말도 노여워하거나 성을 내는 것을 ‘화(火)가 나다’고 표현하니, 히브리어와 우리말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히브리어에는 ‘코(아프)가 뜨거워지다(하라하다)’는 관용구가 자주 쓰인다. 성을 내면 씩씩거리며 코에서 거친 숨을 내뱉게 되니,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코가 하라하다(뜨거워지다)’는 표현은 워낙 독특한 히브리적 표현이라서 의역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지만 하느님은 불쌍한 레아의 처지를 살펴주셨기에 레아는 야곱에게 아들을 줄줄이 낳아 줄 수 있었다.(창세 29,15-35) 그러자 라헬은 시샘하여 야곱에게 불평하였다. 결국 야곱은 ‘코가 하라하며(뜨거워지며)’(화를 내며 30,2) 라헬을 대했고,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주님께서 이집트 탈출이라는 위대한 사업에 쓰시려고 모세를 선택하셨을 때, 모세는 두려워하면서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이를 보내십시오”라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주님의 코가 하라했고(뜨거워졌고)’(주님께서 화를 내며, 탈출 4,13-14), 결국 그는 말을 잘하는 형 아론과 함께 파라오 앞에 나아갔다.
하라의 명사형은 하론이다. 하론의 어원은 ‘뜨거움’ 또는 ‘불’이지만, 대개 ‘노여움’이란 뜻으로 쓰인다. 성경에는 ‘코의 하론’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광야에서 백성이 모압의 여자들과 불륜을 저지르자 “주님 코의 하론”(주님의 타오르는 분노, 민수 25,4)이 백성 위에 내렸다. 하지만 백성의 악한 짓이 끊이지 않자, 다시 “주님 코의 하론”(주님의 분노, 민수 32,14)이 이스라엘을 향해 불붙었다.